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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의 중원 진출

진 목공과 백리해

by 산내

진이 융족과의 투쟁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하여 군사적으로 강국이 되었다.

환공의 패권이 정점에 오를 때 진에도 일세의 영웅이 자리에 올랐다.
바로 목공이다.

진은 융과 직접 맞설 수 있는 군사대국이었지만 늘 뭔가 부족한 면이 있었다.

중원에 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구가 적었다.

국가 간의 싸움이 치열해질수록 인구에 기반한 생산력이 승패를 가르는 게 분명했다. 오늘날에는 인구는 적어도 매우 부유한 나라들이 있지만, 고대에는 인구 자체가 바로 생산력이었다.

진으로서도 이제는 국내의 생산기반을 확립하고, 외교적인 수단을 통해 불필요한 충돌을 막을 인재들이 필요했다.

진이 일어서려면 중원의 인재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중원의 인재들과 진의 무력을 결합하면 진은 바야흐로 동방으로 진출할 힘을 갖게 된다.

이때 목공을 보좌한 사람이 바로 백리해라는 인물이다.

이 인물이 좀 젊었더라면 진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등용될 때는 이미 칠순을 넘긴 나이였다.
그러나 백리해가 등장함으로써 진나라의 무사들은 든든한 갑옷을 입게 되었다.

백리해는 성품이 극히 어질었고, 기본적으로 내실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안목이 뛰어났다.
백리해의 삶도 관중의 삶처럼 한 편의 드라마 같다. 백리해는 우나라 사람이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처참한 가난의 시절이었고, 장년은 굴욕의 시절이었다.
그는 분명히 귀족 출신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재주만 믿고 여러 지역을 전전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관중에게 포숙이 있었듯이 훌륭한 정치적인 스승 건숙이 있었다.

처음 그는 출사를 위해 제나라로 갔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걸식을 하는 처지였다.

그때 송나라의 건숙이라는 사람이 그를 돌봐주었다.

건숙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는 장자였다.


제나라의 공손무지가 양공을 죽이고 등극하자 백리해는 무지를 섬기려 했다.
그러자 건숙이 말렸다.

멀리서 온 백리해는 제나라의 사정을 잘 몰랐기에 건숙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옹름이 무지를 죽이고, 또 공자 규와 소백이 싸우는 난리를 피할 수 있었다.
무지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건숙의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그다음은 주나라의 왕자 퇴를 찾아갔다.
퇴는 말을 좋아했는데 백리해는 말을 키우는 데 소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퇴는 연나라와 위나라를 등에 업고 주나라 혜왕을 몰아낸 사람이다.
그러나 건숙은 이번에도 말렸다.

퇴의 인격도 문제지만 그가 정나라와 곽나라 등 가까운 친척들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백리해는 이리하여 퇴에게 출사 하지 않았다.
결국 퇴는 정나라와 곽나라 연합세력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이번에도 백리해는 건숙의 말을 듣고 피했기 때문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여러 번의 좌절로 실의에 빠진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밥벌이라도 할 요량으로 우나라 군주 밑에서 한 자리를 얻었다. 백리해의 인생에서는 그나마 작은 요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건숙은 이번에도 우나라는 작고 군주는 어리석다며 말렸지만 백리해 어렵사리 얻은 작은 자리를 차마 포기하지 못했다.


그러나 진나라 헌공은 애초부터 우와 곡을 무너뜨렸고, 이 와중에 벼슬을 하고 있던 백리해도 진나라로 잡혀가는 신세가 되었다.

진나라 헌공은 권력욕의 화신이자 야비한 사람이었다.

헌공은 진나라 목공에게 딸을 시집보내면서 우나라에서 잡은 백리해를 잉신으로 보냈다. 잉신이란 한마디로 시집가는 여자를 따라가는 남자 종이다.


이 일은 천리를 주유하다 고향에 정착한 백리해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이미 당시에는 백리해가 실력이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헌공은 그를 쓸 생각이 없었다.

백리해는 이번에는 과감히 진나라를 탈출했다. 작은 나라지만 명색이 한 나라의 벼슬을 한 사람이 외국으로 가서 노예 노릇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초나라 땅으로 달아났다.
그때 나이가 일흔이 넘었다고 하니 그의 운명은 기구하다 못해 참혹했다.

하지만 진 목공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백리해가 현명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를 반드시 등용할 계획을 세웠다.
이것이 진나라 목공의 강점이다.

목공은 원래는 많은 뇌물을 주고 백리해를 찾아오려 했다.
그러나 초나라가 백리해의 가치를 알고 놓아주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래서 포숙이 관중을 데려온 방법을 약간 응용하여, 역으로 백리해를 하찮게 대했다.

목공은 초나라에 사신을 보내 말했다.

"과인의 잉신 백리해가 그대들 국가에 있다고 하오. 검은 양가죽 다섯 장으로 값을 치를 테니 돌려보내주시오."

그러자 초나라는 백리해를 보내주었다.

일국의 군주가 '당연한 권리'를 정중하게 요구하는데 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목공은 백리해를 얻었다.

목공이 백리해와 내리 사흘을 이야기해 보니 과연 인물이었다.

그래서 양가죽 다섯 장으로 얻은 대부라 하여 '오고대부'라는 예칭을 주었다.
이리하여 신분은 미천하지만 큰 재능을 가진 사람이란 뜻으로 오고대부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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