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장검
아버지와 형을 잃고 오나라로 간 오자서는 오나라 공자 광에게 전설제란 사람을 소개했고 전설제는 어느덧 공자 광의 지기가 되었다.
전설제의 용모는 툭 튀어나온 이마에는 호전적인 기상이 드러나고, 깊은 눈에서는 곧은 의지가 느껴졌다. 호랑이 가슴에 곰의 등을 가져 몸집이 장대한 장사였다.
광은 전설제에게 공을 들여서 선비의 예로 대했는데 과연 믿을 만했다.
"하늘이 자네로 하여금 나의 잃어버린 뿌리를 북돋도록 하는군."
전설제가 물었다.
'선대왕께서 돌아가시고 지금의 왕이 섰습니다. 공자께서는 어찌하여 왕을 해치려 하시는지요?"
공자 광이 유세한다.
"선대 군주 수몽께는 네 아들이 있었네. 그중 장자는 제번으로 바로 나광의 아버지일세. 둘째는 여제, 셋째는 여말, 마지막 분이 계찰이었지.
계찰은 현명한 분이어서 선대 군주들께선 돌아가시면서 계속 형제끼리 상속하여 막내 계찰에까지 왕위가 이르게 할 생각이었지.
계찰 숙부가 제후들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때 여말 숙부께서 돌아가셔서 왕위가 비게 되었지.
응당 왕이 되어야 할 사람은 적장자가 아닌가?
적장자는 또 나 광이 아닌가?
지금의 왕 요가 어찌 왕위를 이을 자격이 있단 말인가?
나는 힘이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으니, 장차 거사를 하려면 힘 있는 사람들을 쓰지 않고는 어찌할 도리가 없네.
전설제를 내세워 지금 왕이자 사촌인 요를 죽이고 자신이 왕위를 빼앗겠다는 계획이었다.
전설제가 되물었다.
"주군의 언사는 참으로 노골적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네. 이는 사직을 위해 하는 말이니, 소인배는 받들 수 없네.
오로지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일일세."
전설제는 결국 응낙하고 말았다.
"공자의 명을 받겠사옵니다."
"아직은 때가 무르익지 않았네."
용사는 이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저 군주를 시해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가 좋아하는 것을 구해야 합니다.
왕은 무엇을 좋아하나이까?"
"음식을 탐하네."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요?"
"생선구이를 좋아한다네."
이리하여 전설제는 태호로 가 생선구이 조리법을 열심히 배워서 세 달 만에 맛을 내는 법을 터득하고 명령을 기다렸다.
드디어 공자 광에게 기회가 왔다.
왕의 군대가 앞뒤 다 막혀 꼼짝할 수 없을 때 왕의 사촌형 광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왕의 군대는 밖에 있으니 자신이 거사를 해도 왕을 보호할 사람이 없었다.
그는 몰래 전설제를 불렀다.
"나는 왕이 될 적자이니, 이제 그 자리를 찾고자 하네."
전설제가 처연히 대답했다.
"왕이야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모가 계시고 자식은 아직 어리니 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이 우직한 사나이가 마지막에 가족 이야기를 하자 광이 다짐을 주었다.
"내가 곧 자네일세. 내가 대신 돌봄세."
그리하여 두 사람의 계약은 완결되었다.
광은 드디어 거사 날을 잡고 왕을 초대했다.
그는 지하실에 갑병를 숨겨두고 왕을 대접했다.
때맞춰 왕이 좋아하는 요리를 올릴 차례가 되었다.
호위병들은 요리사의 옷을 벗기고 갈아입혔다.
요리사는 순순히 따랐다.
전설제는 무릎걸음으로 커다란 쟁반에 구운 물고기를 얹어서 왕의 앞으로 다가갔다. 호위병들의 검이 양쪽 가슴에 서늘하게 닿았다.
드디어 왕에게 고기를 올릴 순간이 왔다.
왕이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침착하게 물고기 뱃속에 숨겨놓은 칼을 잡은 전설제.
칼을 뽑자마자 그대로 일어서며 왕의 가슴을 찔렀다.
천하장사의 완력이 칼끝의 예리한 지점에 모이자 두꺼운 갑옷도 별 역할을 하지 못했다. 칼은 왕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누구도 상상할 수도 없이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호위병들의 칼이 전설제의 양쪽 가슴을 관통했다.
전설제는 물론 난자당한 채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공자 광의 무장병들이 지하에서 튀어나와 칼을 휘둘러댔다.
광은 이렇게 왕이 되었다.
이 사나이가 당시 중원은 물론 청사에도 서슬 퍼런 이름을 남기게 되는 오나라 왕 합려다. 전설제가 거사에 사용한 칼을 후세 사람들은 어장검이라 불렀다.
아마도 '물고기 뱃속에 감춘 칼'이라는 뜻이리라.
합려는 전설제의 아들을 경으로 삼았다.
야인이자 자객의 아들이 일약 경이 된 것이다.
합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우두머리로서 약속을 지킬 줄은 알았다.
그는 마치 지하세계의 보스 같은 사람이었다.
그를 거스르는 것은 죽음이었지만 충성에 대한 대가는 확실했다.
이렇게 자객의 원조 전설제는 죽었고 그의 어린 아들은 경이란 벼슬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