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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Dec 08. 2021

유라시아 견문 3(3)

그리스, 아테네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그리스, 아테네>

그리스는 페르시아와 이집트가 이어지는 곳,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 세 대륙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다.
 

1920년대 그리스에는 대대적인 인구 교환이 단행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붕괴되면서 그 지역에서 살아가던 130만 정교 신도들이 그리스로 이주했다.

130만은 그 당시 그리스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리고 그리스 지역에 살게 된, 60만 무슬림 또한 터키인이 되어 아나톨리아로 떠나야 했다.
이러한 1920년대의 인구 교환이 그리스 내전을 촉발한 불씨가 되었다.


 먼저 온 사람들은 기존의 몫을 고수하는 의미에서 우경화되어갔고,

뒤늦게 온 사람은 공정한 대접과 배분을 요구하는 차원에서 좌경화되어 갔다.

우파가 서구를 선망했다면 좌파는 소련을 동경했다.


 냉전의 전초전이 일어난 곳도 그리스다.

그리스의 위치가 관건이었다.

소련이 발칸 연방을 손에 넣고 그리스를 발판으로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서유럽은 범 소련권으로 둘러싸여 완전히 고립된다.
 그래서 입안된 것이 봉쇄정책으로 트루먼 톡 트린이다.


 노쇠한 영국을 대신해서 미국이 반공정책의 총대를 맸다.

그리스가 발칸반도에서 유일하게 공산주의에서 벗어난 까닭이다.


 1940년대 미국의 그리스 내전 개입은 1950년대 한국 내전과

1960년대 베트남 내전에 개입하는 원형이 되었다.

1974년 베트남 전쟁 패배로 그리스만큼은 반공 민주를 사수해야 했다.


 다시금 그리스를 저 멀리 서유럽과 연결시켰다.

지리적으로 한참 떨어지고 경제적으로 수준차가 현저했건만,

무리를 해서라도 유럽 공동 시장에 편입시킨 것이다.
 그 영광의 선물로 하달된 것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었다.


 150년 줄기찬 서구화가 달콤한 결실을 맺는 듯 보였지만 공든 탑이 무너졌다.

수 십 년 걸려 이룬 탑이 허물어지는 데는 5년이면 족했다.
 유럽 중앙은행과 IMF 구제금융에도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가계 수입은 1/3 수준으로 줄었다.

국가 경제 규모는 3/4으로 축소되었다.


2009년 이후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수만 명의 실직 청년들이 아테네를 떠나 농촌으로 돌아가고 있다.
 2009년 이래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11% 늘었다고 한다.
 시골살이 녹록지 않고 넉넉하기도 쉽지 않지만 표정 하나만은 밝았다.
 다시는 벽으로 막힌 사무실로 돌아가 하루 종일 모니터만 보면서 살지 않을 것이라 한다.


<베를린의 목자, 메르켈>

메르켈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러나 어떤 ‘페미’보다 여성의 역할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메르켈 1954년생으로 1990년 정치에 입문했다.
 행정부에서 묵묵히 실력을 닦은 그녀는 1998년 기민당(기독민주당) 사무총장에 등극했다.
 슈뢰더가 이끄는 사민당(사회민주당) 정권에 맞서 야당 지도자로 부상했다.
 2000년 당수 자리를 거머쥐고, 2005년 총리 자리에 올랐다.


대중 앞에 나서야 하는 정치인이지만 소박하고 단출하다.
 요란한 빈수레가 아니라

인내와 헌신, 배려와 공감으로 인격을 다지고 품행이 단정하고 기품이 서려 있다.


메르겔이 세 번의 총리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방문한 국가가 중국이다.
 독일의 4차 산업혁명 합작 파트너도 중국이다.
 머지않아 베이징에서 출발한 고속철이 베를린까지 가 닿는 시대가 열린다.

 훗날 역사가들은 메르켈을 ‘독일의 예카 테리아”로 비유할지도 모른다.
 2017년 브렉시트로 영국은 이미 2등 국가이며, 프랑스도 1류라고 하기 힘들다.
 하지만 독일은 여전히 강국이며 그 중심에 메르켈이 있다.

 

<러시아>

 1991년 소련이 붕괴한다.

988년 러시아가 출발하고 천년이 되는 해였다.
 현재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이 가장 신뢰받고 있다.
 두 번째가 러시아 정교, 

그리고 세 번째는 군대다.
 정당과 언론과 은행 그리고 노조는 최하위에 속한다.


푸틴은 195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출생 당시 레닌그라드였다.
 레닌그라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KGB에 들어간 것은 1975년으로 동독 근무를 비롯해서 15년을 일하고 1990년에 퇴직했다.

 총리에 오른 것은 1999년 8월, 200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4년씩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2008년 5월부터 총리가 된다.
 한결 여유가 생겼다.

다시 공부하고 연구했다.
 2012년 대통령직에 복귀하면서 아시아로의 축의 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시베리아의 극동 개발을 본격화했다.


 푸틴의 시각은 과거에 메여 있지 않고 냉전 시대의 경쟁자 미국을 겨냥하지 않는다.
 그는 나는 새를 잡기 위해서는 앞을 보고 쏘아야 한다는 진리를 실천하고 있다.
 러시아의 미래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카잔-러시아 제국과 이슬람 문명>

 오스만 제국이 크림반도를 점령한 1475년 이래

400년 만에 흑해의 세력 이동이 일어났다.


 오스만이 아프리카-아시아-유럽의 세 대륙에 구축한

 한 모퉁이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즉 오스만의 쇠락을 촉발한 것도 서유럽이 아니라 흑해를 마주하고 있는 러시아였다.


튀르크-유라시아 세계의 한 복판에 자리한 도시가 카잔이다.
 유럽과 중동과 아시아를 잇는 교통의 십자로에 위치한다.

북방의 러시아 상인과 남방의 아랍-페르시아 상인들이 교류하는 최적의 입지조건을 누렸다.
 16세기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르네상스를 이끄는 거점 도시였다.
 그 카잔을 복속시킴으로써 러시아는 유라시아 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아스타나>

1991년 소련이 해체되었다.

종주국 러시아부터 소비에트 연방에서 탈퇴해 버렸다.
 1917년 혁명을 전파할 때는 무례하더니 혁명에서 철수할 때는 무책임했다.
 마지못해 독립국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2013년 시진핑이 일대일로를 최초로 선언한 장소가 바로 아스타나였다.

지난해 아스타나에서 열린 상하이 협력기구 정상회담에서는

 ‘상하이 협력기구 자유무역지대’ 창설도 논의가 되었다.


 터키부터 중국까지,

인도에서 러시아까지,

유라시아의 8할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해내겠다는 야심 찬 포부다.
 중원과 북방과 서역이 아스타나에서 합류한다.


2017년 6월부터 9월까지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는 유라시아의 허브가 되었다.

주제는 미래 에너지였다.
 연초에 파리 기후협정에서 미국이 탈퇴해 버렸다.


 신대륙은 제쳐 두고 구대륙만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모색했다.
 태양력과 풍력, 지력 등 청정에너지를 연구하는 기업들이

유라시아의 한 복판에 집결해 지혜를 모았다.

20세기 유라시아는 온통 아팠다.

 21세기는 통한다.
 아스타나는 생기가 흐르고 활기가 넘친다.

카자흐스탄의 혈기는 왕성하다.

 

<시베리아>

 시베리아가 없었으면 러시아 또한 없을 것이다.

러시아가 오늘의 러시아인 것은 오롯이 시베리아 덕분이다.

국토의 8할을 접한다.


 2014년 세기의 빅딜이 성사되었다.

 ‘시베리아의 힘’ 러시아와 중국 간 에너지 합작이다.
 시베리아의 천연가스가 만추 라이를 지나 중원으로 흘러간다.


 30년 빅딜의 액수를 4,000억 달러라고 표기한다.

그러나 장차 표기 단위 또한 달라질 공산이 크다.
 오일-달러와 일선을 긋는 가스-위안화 체제를 합의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의 지하자원을 사고팔 때는 유라시아 화폐를 사용하기로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래소에는 유로화와 루블화를 사용한다.

블라디보스토크 거래소에는 루블화와 위안화를 사용한다.


 중앙아시아와 중동도 의기투합했다.

카자흐스탄부터 이란과 터키, 카타르까지 동참한다.

 지난 연말 독일마저 합류했다.

도이체뱅크 또한 외환에서 달러의 비중을 줄이고 루블화와 위안화 비중을 높이기로 결정했다.

송유관, 지하의 길에 이어 지상에서도 또 하나의 빅딜이 예고되어 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고속철도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이미 유라시아 고속철은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동남아부터 동유럽까지 시속 300㎞의 ‘조화호’와 시속 400㎞의 ‘부흥호’가 달린다.

유라시아 익스프레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하룻밤이면 도착한다.
 부산에서 런던까지 이틀이면 충분하다.

 

<블라디보스토크>

 1860년 러시아 제국과 대청제국 간 베이징 조약을 체결하였다.

 불평등 조약이었고 연해주가 러시아 땅이 되었다.
 현재 극동 인구는 600만을 조금 넘는다.

블라디보스토크 인구는 60만이다.


 2040년까지 블라디보스토크는 인구 100만 도시,

극동은 1,200만에 이르는 목표다.
 장차, 블라디보스토크를 동쪽의 수도로 삼겠다는 말이 빈 소리가 아닌 것이다.

 

<에필로그>

미국이 중국에 무역전쟁을 발동시킨다는 말도 옛말이다.

 이미 중국의 수출과 투자는 2016년을 기점으로 미국에서 유럽으로,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더 이상 ‘자유의 나라’가 아니다.
온/오프라인 장벽을 높게 쌓는다.

 외국인이 투자하기도 유럽이 미국보다 훨씬 자유롭다.
 자유무역의 거점이 유라시아로 이동하는 것이다.


2017년 트럼프의 유엔 연설은 천박하고 좁고 낮다.

그 대척점에서 가장 격조 높고 기품 서린 연설을 선보인 인물이 이란의 로하니 대통령이었다.
 이슬람 정통 학자 울리마 출신 다웠다.
 

교양이 넘치고 사려가 깊으며 단정한 문장으로 트럼프의 졸렬한 연설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미천한 상놈과 위엄을 갖춘 지도자 간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이슬람 공화국’ 이란의 국력을 한껏 과시한 것이다.


1979년 이란은 이슬람 혁명 이래 미국의 경제제재를 경험해왔다.

미국과의 무역이나 투자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

내성이 생겼다.
 미국 혼자서는 아무런 타격을 가하지 못한다.

미국에 동참하는 똘마니 국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졸개는 더는 없을 것이다.


2017년 테헤란에서는 이란에서 열리는 첫 번째 일대일로 포럼이 개최되었다.
 이란을 종단하고 횡단하는 고속철도 두 개 노선을 신설키로 했다.

우루무치에서 테헤란을 지나 이스탄불 가 닿는

이슬람 세계의 동/서 네트워크도 2020년 완공하기로 했다.


나아가 이란-유럽 간에는 유로화로, 이란-중국 간에는 위안화로 결제한다고 했다.
 오일-달러라고 하는 지난 백 년의 지하자원-기축 통화 공식이 허물어지는 것이다.


내전 이후 시리아의 재건 지원에 총대를 멘 나라는 중국이다.
 참가국들의 면모가 획기적이다.
 오스만 제국을 분할하여 서아시아 분열 체제를 만들어 낸 영국과 프랑스는 없었다.

 그들을 계승하여 중동을 세계의 화약고로 만들었던 미국도 없었다.


 반면 브릭스 국가들이 참여했다.

특히 현금이 풍부한 중국이 시리아 교통망과 통신망 재건을 주도한다.
 다시 말해 시리아 연결망이 일대일로와 직결된다.

이란과 더불어 이슬람 세계 3강을 겨루는 터키 또한 이란과 부쩍 돈독하다.


 그리고 터키와 미국 간 교역은 갈수록 줄고 있다.

미국의 원조로 성장하던 20세기의 터키가 아니다.


 2020년대에는 러시아가 터키의 관광객 첫 번째가 될 것이다.

 터키의 핵발전소 또한 러시아가 짓고 있다.
 2023년까지 송유관과 발전소 건설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이스탄불과 모스크바가 운명 공동체가 되어 간다.


중동이 바뀌어 가는 반전의 마침표를 찍은 것은 역설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였다.

2017년 살만 국왕이 친히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이례적이며 획기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알현한 것 또한

중동의 판세가 이란-터키-러시아-중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탈레반을 적대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그들과 협상해야 한다.
 탈레반과 다른 세력 간 협상을 이끌어서 연합정부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현재의 불안정은 미국의 괴뢰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푸틴의 빼어난 정치력에 든든한 경제력으로 지원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벌써 인프라를 깔고 있다.

도로를 만들고 다리를 놓고 철도를 깐다.


 러시아-이란-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으로 종단하는 남북 교통 회랑도 만들고 있다.
 러시아-중국-이란의 합작 속에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은

 유라시아의 중심 국가로 동과 서를 튼튼하게 엮고

남 유라시아와 북 유라시아를 단단하게 조이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2017년은 홍콩의 중국 반환 20주년이다.
 곤 홍콩과 중국 대륙 간에도 대교가 개통된다.

남중국과 홍콩을 가로지르는 55㎞ 세계 최대의 교량이다.
 지금까지 4시간 30분 걸렸지만 향후 1시간도 못 미치는 이웃 도시가 된다.


1945년 이후, 미국이 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했다.

지금은 1/4도 안된다.

근근이 20%를 유지하고 있다.

점점 더 비중이 떨어질 것이다.


 중국이 실질 구매력에서 앞선 것이 2014년이다.

 2023년이면 1.5배의 격차가 벌어진다.

2030년이면 GDP도 역전된다.

2045년이면 중국이 미국의 3배가 된다.


 미국은 일국주의로 쪼그라들고 있고,

중국은 제국으로 개방되어 외부 세계를 껴안으려고 한다.
 신대륙과 구대륙이 반전한다.

 신세계와 구세계가 반전한다.


 중국은 더 이상 20세기형 국민국가가 아니다.

21세기의 새판은, 유라시아의 중원이다.

동서남북으로 길을 뚫는다.

세계의 모든 길이 중원으로 통한다.

그 새 길을 따라서 새로운 희망이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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