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미래: 프롤로그[1]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확실하게 아는 것은 우리의 능력을 벗어난다. 다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짚어 살펴보면 미래의 흐름을 가늠해 볼 수는 있다. 한국 경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수축사회
아시아 외화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위기... 한국경제에서 구조적 변화가 있었을 법한 시기들이다. 이후 구조변화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여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수축사회로의 전환이 나타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국민경제의 다방면(생산, 고용, 소비 등)에서 충격이 주어질 것이고, 많은 부문(교육, 국방, 산업 등)에서의 변화가 동시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수축사회에서의 삶의 양상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들과 다를 것이다. 경제구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표적 변수들(경제성장률, 경제활동 형태별 항목, 총수요 항목, 총공급 항목 등)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탄소중립 질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 경제가 성장해 가고 있는 만큼, 글로벌 시장의 변화 방향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즉 국내 요인만으로 미래 성장 경로를 가늠해 보기 어렵다. 그런데 탄소중립이 글로벌 경제의 변화를 주도하는 메가트렌드로 대두되고, 국제협약을 통한 글로벌 경제질서의 변화가 강화되고 있다. 기후, 환경 등의 이슈는 외부효과와 관련된 만큼 개별 경제주체(기업, 정부, 가계)의 선택에 의존하여 대응하기 어렵다. 글로벌 경제 차원에서의 공조, 국민경제 차원에서의 협업 등에 기초한 대응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이는 탄소중립 국제질서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일부 국가는 상대적으로 큰 혜택을 누리는 반면 다른 국가는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을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 탄소중립 질서 확산 속에서 한국은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경로창출
주요 선진국들의 성장경로를 살펴보면 국민경제의 성장이 경제구조와 상당히 큰 연관성을 가짐을 부인하기 어렵다. 과거에 관찰하였던 연관성이 미래에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리라는 믿음이 있는 경우, 관련 지표의 변화 추이를 통해 미래 성장 경로를 전망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수축사회, 탄소중립 등의 환경 하에서 과거의 연관성이 흐트러지는 상황인 만큼, 미래에 나타날 변화의 방향과 속도가 현시점에서의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날 위험이 있다. 특히 기존의 연관성이 유지되는 경우에는 내외부 충격이 주어져 기존의 균형이 흐트러지더라도 시간이 경과하면서 기존의 균형으로의 회귀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기존 균형으로의 회복력에 대한 공감대가 약해진 상태이다. 오히려 새로운 균형으로 이동해 가는 경로창출을 모색해야 할지도 모른다. 충격으로 균형에서 벗어난 경제가 기존의 균형으로 회귀할 수 있을까? 혹은 경로창출을 통해 새로운 균형으로 전환한다면 새로운 균형은 어떤 모습일까?
에너지 전환
수축사회, 탄소중립 등으로 인하여 향후 성장경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다양한 가치가 표출되면서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진다. 공감대 형성의 지연으로 미래를 위한 전략의 수립이 늦어지고, 어떤 전략도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러하기에 미래 지향점을 제시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주요 선진국들의 경험과 한국 경제가 걸어온 길에 비추어 볼 때, 인구구조, 산업․무역구조, 재정구조 등의 변화가 교차하는 지점에 에너지 전환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에너지 시스템에서 미래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가능할까? 어느 정도의 속도로 전환이 이루어질까? 국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응축의 도약
예상되는 경제구조의 변화에 대응하고, 국민경제의 지속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과제의 해결 방식에 대한 이견이 큰 상태이다. 향후 인구구조, 산업․무역구조, 에너지구조 등이 변화함에 따라 각종 사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축사회가 본격화되면 상당수의 사회구성원이 기존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는 만큼 사회안전망 강화에 대한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려면 세금 부담이 커져야 할 듯한데 국민경제 성장 둔화가 심화되는 경우 사회구성원들이 비용부담 증가를 수용할지 궁금하다. 재정지출 증가 속도, 필요 재원 확보 방안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 여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 인식에 따라, 민간 부문 스스로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려는 것이 ESG 확산의 밑거름일 것이다. 우리의 세금으로 국민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해 요청되는 재정지출 증가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재정지출 증가 속도의 합리적 관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가능할까?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역할 조정을 통해, 지금까지와 다른 특징(급격한 변화, 불연속적이고 비선형적인 전환, 위기혁신에 의한 촉발 등)을 갖는 응축의 도약이 이룰 수 있을까?
우리 앞에 많은 질문이 있다. 정답은 아직 모른다. 답을 탐색하는 여정을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