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이가 말하는 '신앙'

에우리피데스 <바카이> 속 인간존재론 파헤치기

by young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에서 테이레시아스는 지혜로운 예언가이자, 육체의 눈을 감고 영혼의 눈을 뜬 인간으로 묘사된다. 에우리피데스의 <바카이>에서 테이레시아스는 카드모스와 대비되는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그와 차별성을 보이는데, 두 사람은 모두 신에게 순응하지만, 테이레시아스의 경우 신은 이미 그 존재 자체로 위대하고, 전지전능하시기에 인간이 그들의 뜻을 따르고 숭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을 섬기는 것은 인간의 당위적인 의무이자, 권리, 삶의 위안으로 작용한다. 인간이 지닌 지혜의 수준, 지식의 깊이는 신들의 권위 앞에 모두 한없이 사사로운 것들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는 코로스의 여신도들이 주장하는 바와도 일맥상통한다. 그에 반면, 카드모스의 주장은 그 근본에서 테이레시아스와는 차이점을 지니는데,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었다. 자신의 안전, 자신이 속한 가문의 안위 등, 그가 신을 숭배하는 이유는 신을 향한 경외심에 있는 것이 아닌,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그 얄팍한 심산에 있었다. 일종의 기복신앙과도 같은 마음가짐을 가진 그는 ‘악타이온’처럼 신으로부터 어떠한 해나 봉변을 입지 않기 위해 신에게 ‘겉으로만’ 충성을 다하는 척한다.


이렇듯 필자는 에우리피데스가 ‘신앙’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소포클레스와는 조금 다른 입장을 취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소포클레스는 신이 내린 운명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그들의 신탁이나 형벌은 확실하게 전달되어, 그 속에는 우리가 감히 토를 달 수 없는 큰 뜻이 전제되어있다. 그렇기에 각자의 몫이기도 한 운명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후배 작가이기도 한 에우리피데스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그의 작품에는 디오니소스(바카스)가 어떤 뜻으로 어떤 것을 행하던 그 이유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을뿐더러, 이미 충분히 혼란한 세상 속에서 그 어떤 것도 명료하게 정해진 정의를 가지지는 못하므로 인간은 신의 뜻을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테이레시아스가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는 신의 뜻을 온전히 번안하는 이라면,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서는 신의 뜻을 전하지만 자신조차 그것에 확신을 가질 수 없는 보다 더 ‘나약한’ 이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이 곳에서의 ‘여인들’은 디오니소스의 여신도들, 더 나아가서는 대지의 어머니, 즉 자연을 비스듬히 상징해낸다. 여인들은 연약해보이지만 강하고, 물 흐르듯 인간 세계를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녀들에 의해 인간은 살아가기도 하고 떼죽음을 당하기도 하며, 온갖 풍요로움과 고난은 그들의 손에 달려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힘을 가진 그녀들은 넓은 아량으로 가축을 보살피지만,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빼앗기도 하는 등 신의 축복과 처분을 행하며 신의 권위를 드높인다.


인간은 그런 자연의 ‘예측불가성’과 ‘전능함’에 고개를 낮추고, 신이 선한 뜻을 행하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밖에는 그들에 대항할 방식이 없다. 그렇기에 인간은 모두 공평한 것이며, 자연의 흐름 역시 공평한 것이다. 그들은 어떤 시선으로 보냐에 따라,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냐에 따라 때로는 긍정적, 때로는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의 속성은 긍정이나 부정 중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어떠한 하나의 정의로 한정될 수 없다.


한편, 코로스장과 아가베의 대화는 이전과는 조금 더 빠른 호흡으로 진행되며 극의 클라이맥스를 구성한다. 사실, 이 부분의 구절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조금 어려운 감이 있었다. 아가베는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해 매우 당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고, 코로스는 그에게 반문한다. 아가베 스스로는 자신과 자신의 아들 펜테우스를 칭찬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스 문명에서의 갈등은 그것의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데, 지혜가 결여된 무지한 자로 대표되는 펜테우스나 그를 참혹하게 벌하는 디오니소스나 사실 별반 다를 것은 없다. 신이라고 해서 인간보다 더 나은 존엄한 도덕성이나 인내심을 갖춘 것이 아니라는 점은 굉장한 의미를 시사하는데, 바로 종교나 신, 운명,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연속은 그 자체로 우리를 옭아매는 사슬이 되어 고통과 억압만을 낳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삶이 아닌, 결국 언젠가는 자신의 죄를 증명받아 지옥불로 떨어져 가는, 즉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어가는 길을 걷는 우리는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신앙심을 보여줄 필요 역시 없을지도 모른다. 이는 오히려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인간만을 끊임없이 양산해내는 세계의 굴레를 형성할지 모르며 그 생각의 틀은 계속해서 유전되어 편협한 집단의식을 낳고, 두려움에 떨면서 신의 뜻을 자기식으로 잘못 해석하는 경우들만을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이렇듯 그리스 세계의 사고관은 완벽하지 않다. 더더욱이나 위대하지도 않다. 그러나 인간이 신에 대한 상당한 오해를 가졌을지 모른다는 것을 은연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굉장한 의미를 지닌다.



결론적으로, 에우리피데스가 묘사하는 인간형은 매우 “인간답”다. 즉, 현실적인 캐릭터에 가깝다는 말이다.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 모두 신이 주가 되는 이야기가 아닌, 그들 아래 살아가는 인간이 주가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맞닿아있지만, 소포클레스의 경우 인간은 보다 더 존재 자체로 우월하고, ideal한 모습을 갖춘다. 에우리피데스가 묘사한 신은 마지막 장면에서 그 특징을 더 확고히 하는데, 인간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또 한편으로는 전능한 심판을 내린다.


“신께서도 인간이 할 때와 같이 해야하나요?”


아가베는 묻는다. 디오니소스는 그게 이미 정해진 규칙이라고 이야기할 뿐, 한낱 인간을 굳이 설득시키려는 노력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말하는 것이 정답이고, 행하는 일이 옳을 뿐이다. 에우리피데스는 신을 그다지 아름답거나 긍정적인 존재로 여기지는 않는 듯하다. 인간은 이곳에서 신들을 조롱한 최후를 맞지만, 이미 카드모스의 기복신앙처럼 그들 역시 신에게 조건 없는 찬사와 경배를 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에우리피데스는 인간의 내적, 그리고 외적 갈등에 초점을 두어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들은 그들이 짊어진 불충분함과 유한함, 그리고 늘 어떤 죄를 끊임없이 짓고 살아가며 자신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아는 자보다, 모든 것을 모르는 자가 더 행복할 수 있는 법. 완전하다고 꼭 온전한 것 역시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갈 날들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기에, 신의 뜻을 제대로 해석해낼 수 없기에 온전한 ‘인간’으로서 그 잠깐잠깐 주어지는 행복과 불행을 만끽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고, 이미 태어난 이상 이 세계를 밟아나갈 시간 속의 책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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