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인생('philosophing' life)

서동욱 <철학연습>

by young

‘철학’.

말 그대로, “앎을 사랑한다”를 의미하는 이 학문은 그 자체로 연구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더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철학.


지식이 온전히 자기의 것이 아니기에 지식과 친구가 되려 노력할 수 있는 자들을 우리는 예로부터 ‘필로소페인’, 즉 ‘철학자’라고 불러왔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각자의 로고스를 잃어버리기 쉬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인간은 의심스러운 일에 반문하지 않고, 재미없는 일에 뛰어들지 않으며, 무분별한 수용으로 세상의 것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수동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이보다 위험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왜 사유하려 하지 않으며, 인간을 목적 그 자체로 봐주지 않을까?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일은 무능으로 여기고, 지식을 탐구하는 자들은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에서의 철학은 그리스 세계에서 취급되던 철학과는 매우 상이할 것임이 분명하다. 저자는 또 한 가지 현시대의 철학에서 중요한 지점을 짚어내고 있는데, 바로 ‘불균형’이다. 고대 지식의 평등한 장터이자, 현시대의 인터넷과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던 지혜의 땅, 그리스가 추구했던 다양하지만, 균형 잡힌 논의의 장에서는 멀어진, 누군가의 권력과 누군가의 동조가 주된 축을 이루는 현대의 철학은 확실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철학을 철학으로만 여길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 시대에 어떤 전환점들이 선행되어야 할까? 먼저, 자신이 과반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 해서 ‘틀린’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야한다. 뭐, 당연하고 또 뻔한 소리라 여길 수 있지만, 생각만큼, 아니 그보다 더 우리는 남들의 의견에 쉽게 휘둘린다. 그러고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꿈틀대는 반란의 씨앗을 꾹꾹 눌러 담아 삼키고 또 삼킨다. 먼저 같은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생각을 그대로 답습하여, 그것이 마치 자신이 생각해낸 결과물인 것처럼 다시 쓰고, 또 다시 쓴다. 물론, 온전히 ‘독창적’인 철학이란 존재 불가능하다.


철학과 같은 형이상학적이면서도 추상적인 학문에서의 독창성이란 마치 “복권 긁기”와 같다.


확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자기의 것을 주장하기 힘든 철학이라는 학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로고스를 지켜내야 한다. 마치 ‘익명’이라 말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처럼 용감한 자부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서로의 학연, 지연에 목을 매며 덕담만이 오가는 토론이 아닌, 숭고한 비판력이 담겨야만 한다. 철학자라면, 철학을 능동적으로 실천하고, 그것을 공동체와 공유해야 할 책임이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과의 교류만이 아닌, 나와는 정반대의 의견을 가진 이들을 의도성의 목적하에서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학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첫 번째 태도 역시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는 나는 학자라면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한 우물에 갇히지 않도록 끝도 없이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철학을 잘 모른다. 한 번도 이 학문을 완벽하게 이해해본 적이 없을 만큼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단 한가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철학에 있어서 단지 가르침을 전수 받고, 정해진 지식을 암기하여 축적하고, 그대로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등의 표면적인 전승만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에서 출발한 철학적 사고관에 대해 그리스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그러나 현시대의 맥락에 맞게 접근해야한다. 그 어떤 학문의 학자보다도 철학자는 주체적이어야 한다. 내가 나를 알고, 타인을 알며, 이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이해의 폭과 생각의 틀을 넓혀가는 훈련과 실습을 겸해야한다.


철학연습』은 내게 ‘이성’을 가져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이야기해준 첫 번째 책이었다. 몸이 자유로울 때 비로소 철학을 연습할 여유가 생기듯이, 이성을 지니고, 이성을 지닌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행위는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수많은 논의나 담론을 지탱할 수 있게 한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나는 스스로 ‘철학’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수많은 방법과 형식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학문을 접하고, 과학과는 차별화된 철학만의 고귀한 역사성을 잊지 않으며, 그저 죽어있는 예전의 것이 아닌, 현시대 속에 활발히 살아 숨 쉬고 있는 철학의 유산과 그 수많은 부산물로 이루어진 학문에 눈을 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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