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익『다윈의 식탁』
진화론은 지구상의 생명체가 유전적 변이를 거쳐온 과정에 대한 다윈의 학설로, 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꾼 과학계의 엄청난 유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다수의 사람은 다위의 이러한 생각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심지어는 종교를 가지지 않은 무교인이라 하더라도 진화론에 딱히 관심이 없거나 굳이 동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존재하는 것 같다. 내가 감히 그 이유를 예상해본다면, 우선 인간은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믿고 싶은 우월감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의 존재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지 노력해서 발생된 것이 아니다. 사실, 이는 진화론을 숭배하지 않더라도, 아주 단순한 기초 생명과학만 배우더라도 알 수 있는 것임에도 여전히 놀랍다.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을 나누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심지어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조금만 늦게, 혹은 일찍 사랑을 나눴더라도 태어난 아기가 다른 ‘나’가 되어있을 뿐, 지금의 ‘나’라는 인격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자신만의 ‘personality’를 가진 인간이라면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주장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더 우월한 유전적 형질을 가진 존재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어느 쪽으로 우월한 존재와 어느 쪽으로 열등한 존재가 모두 생겨나고, 이후에 이들의 후손들이 지금의 세계를 이뤄온 랜덤한 계보가 있었고, 다윈은 이 계보를 생명의 나무로 표현한다. 사실, 그렇기에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인간은 자연에서 발생된 ‘나쁜 설계’의 대표적인 예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어떤 인간이 자신이 사실은 고등한 지적 생명체이기 이전에, 자연의 실수로 발생된, 우주의 먼지조차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와 같은 인간의 ‘평범성’을 인정해야 인간의 또 다른 ‘비범성’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사실, 우리가 자연 속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뿌리를 내려 진화된 존재이기에 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인간은 그 자체로 대단하고, 또 비효율적인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다. 질병에 취약하고, 몸집도 크지 않은데다가 피부 조직과 호흡계도 약하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동물들은 할 수 없는 고급 ‘언어’로의 소통이 가능하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지조차 우연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그렇게 ‘정착되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우리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유전자를 건네주었고, 인간은 어떻게 하면 그 유전자를 잘 보관하고 전달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며 살아간다고 주장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그는 우리가 알고, 믿고, 선호하는 모든 행위가 사실은 우리 안의 유전자가 지시하는 것을 따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자연선택’에 대한 다윈의 주장보다도 강력한 성질을 띠고 있는데, 만약 정말 그가 주장하는 것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 또한 우리가 얼마나 ‘철학적’이기보다는, ‘생물학적’인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인간은 쉽게 자신이 동물, 혹은 짐승과는 많이 다른 생명체라고 착각하지만, 모든 존재의 목적은 생존과 생식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다시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운명 따위는 애초에 없었고, 우연의 배열, 구성, 설계에 따라 ‘프로그래밍’된 인간은 자신이 물려받은 뇌로부터 이러한 모든 인문학적인 사유와 신념을 되물림 해온 것뿐이다. 물론, 진화론이 여전히 어려운 논제인 것 하나는 확실하다. 나야 신실한 유신론자도 아니고, 우주에 대한 특별한 신념을 가진 것도 아니기에 다윈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도 당연히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생각은 ‘사실’이기 보다는,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진실’에 가깝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보고 싶다.
지구상에서 드러나는 ‘정교함’들을 이해할 방편이 없을 당시 전지전능한 창조주에게 그 공을 돌려온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사실을 적당히 마주할 줄도 알아야 한다. 책의 ‘다윈’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복잡한 형질에 대한 만족스러운 설명이 아직 없다는 이유로 창조론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회피이지, 더 나은 대안적 설명을 찾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