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인간적인 필연, 무속

박찬경 감독의 영화, <만신>

by young


단지 잘 모르는 이들의 삶이 아니다.

타자라고 믿었던 무속인의 삶이

어쩌면 우리와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


영화는 시각적인 즐거움도 놓치지 않았다. 여러 민화 이미지와 포인트가 되어주는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잘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친숙한 시점에서 바라봐볼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첫 시작에서 영화를 위한 고사를 지내는 장면을 보여준다는 점은 특히나 여기서 주목할 점인데, 현실과 영화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기법은 많은 영화에서도 보이는 특징이었지만 <만신>에서는 굉장히 새롭게 다가오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야 영화 자체가 가진 소재의 독특함에 더해, 영화 촬영팀의 모습이나 그들의 명명이 영화적 존재로서 드러난다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허구와 실제’라는 요소는 이 영화에서 굉장한 중요 지점이다.

무당 김금화의 언급 중엔 “진실된 굿과 가짜 굿의 차이를 찾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가”라는 말이 있다. 허구와 실제 간의 분별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너무도 잘 드러내주니까.

영화라는 매체, 즉 미디어의 특성이 무속의 의미와 본질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 또한 찾아볼 수 있었다. 무속신앙 또한 하나의 종교로써 그 자체의 개별적 특성을 가진 믿음 체계이자, 결국 다 사람이 생각해서 만든 위기 극복의 장치들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헛되이 흘려보내는 것이 아닌 집단적으로 치유하고 기억하게 만드는 촉매제로서 무당의 몸짓과 노래는 그 너머의 무언가를 건드리는 듯한 뼈저린 속삭임을 들려주고 있었다.


종교란 인간에게 삶을 살아나갈 힘과 어떤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게 하는 근원적 희망을 심어주는 존재이다. 영화 <만신>은 '샤머니즘'의 소재로 종교가 인간에게 행하고 있는 그 힘의 원천을 제시하며 개별적인 것을 넘어선 ‘대의’가 가진 목적에 의거하여 여러 종교와 비슷한 믿음들의 묶음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해와 수용, 결합의 장인 우리 세계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혹은 특정 집단을 배척하려는 시도를 할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context 속에서 행해지는 개인적, 종교적, 일상적인 모든 행위는 다 결국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 즉 지극히 ‘인간적’인 필연이라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화합으로 향해가는 열쇠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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