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났으니까 사는게 아니야

이안 감독, <라이프 오브 파이>

by young

제목이 다 담지 못한 환상적인 서사를 보여준다. 한 영화가 이토록 잔잔하면서도 이토록 화려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파이의 여정이 눈물겨우면서도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 그리고 절경과 마주한 그의 눈빛을 보면 어디선가 부러움이 샘솟기도 한다. 파이는 이 영화 속에서 한 사람이 호랑이라는 무시무시한 개체와 함께 어떻게 상생과 공존을 꾀할 수 있었을까를 보여주는 도구로써도 작용하고 있는데, 그 과정이 매우 비상식적인 것 같으면서도 현실적 면모를 띠고 있어 때로는 웃음, 그리고 때로는 눈물을 자아낸다.


특히 나에게는 영화 초반부에 파이가 인도에서 평화롭게, 가족들과 함께하던 시절의 묘사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파이가 당시 세 개의 종교를 동시에 믿고 있다는 것으로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인지 곱씹어볼 수 있었다. 모든 종교는 본질적, 그리고 궁극적인 공통분모를 가진다. 바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파이는 어렸을 적 호기심에 여러 종교를 접한 것도 있지만, 결국 여러 종교가 가진 힘의 실체는 모순되지 않고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파이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파이의 이런 동시적 믿음에 그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는 하나의 근원을 가질까 하는 의문에는 물론 다양한 의심과 반론이 존재하지만, 어른이 되기 이전 느꼈던 비이성적인 사고방식에는 과학적 합리주의로는 설명되지 못하는 종교적 근본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드러내는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는 모두 “신을 믿게 만드는 이야기”로 설명될 수 있었다. 끔찍한 기억과 잔인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만든 첫 번째 이야기와 신화, 그리고 종교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의문을 제기하는 두 번째 이야기는 인간의 삶이라는 특성 하에서 모두 진실일 수 있다는 결론을 가져온다. 나는 이것에 대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겪는 다양한 상황에서 신념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떠올려보는 데도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고립’이라는 말은 한 곳에 갇혀 다른 외부적 상황과 소통하지 못하는 형국을 의미한다. 확실한 신념을 갖는 것은 어떠한 때에는 좋은 마음가짐일 수 있다. 이리저리 줏대 없이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은 많은 사람, 그리고 철학자나 예술가와 같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념이 너무 강해 점점 주변, 혹은 더 멀리 있는 것들에 대해 맹목적으로 되는 순간부터는 고립된 인간이 된다. 이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언제든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언제든 자신이 옳지 않고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한 우물만 파는 신념을 갖되, 다른 우물조차 무시해버리지는 않는 사람이 될 것. 그것이 진정한 종교가 제시하는 인생의 방향성이자 인간에게 부여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파이의 두 이야기는 각각 그 자체로 많은 상징적 의미를 보유하며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 것이냐는 물음을 던져준다.


태어났으니까 사는 게 아니다.

어떻게 능동적이고 뚜렷한 ‘비전’을 가지며 살 것인지도 생각해 볼 기회다.


의심이 신념을 더욱 두터히 할 수 있는 것처럼, 고통을 통한 삶의 성찰은 오히려 이 지독한 현실을 더 잘 살아나가고 싶어 하는 강력한 지지대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신념이 직접적, 그리고 간접적으로 인간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가장 환상적이고도 절실하게 드러내는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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