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글래스, <해변의 아인슈타인>
오페라가 왜 지금까지 ‘어려움의 미학’이라는 별칭 하에서도, 고급스러운 부르조아 문화생활로서의 위치를 돈독히 해올 수 있었을까? 그것이 단지 극과 음악, 무대와 의상, 시청각-복합 감각을 자극시키는 종합예술이라는 이유를 넘어서서, 오페라라는 장르만이 가지는 독특한 상징적 함의는 시대를 거쳐 재증명되고, 현시대 우리의 앞에까지 놓이게 되었다.
어떻게 제대로 오페라를 이해할 수 있을까의 의문이 던져지는 시점에서, 나는 더 이상 과거의 오페라, 그 굳어진 의미를 넘어선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새로운 오페라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싶다. 글래스의 <해변의 아인슈타인>의 Théâtre du Châtelet' 2014년 프로덕션은 그 경험으로서의 오페라를 설명하기 아주 좋은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음악 같은 음악’이 아닌, 인간의 움직임, 소리와 무대의 비조응적 공명, 반복된 무의미함, 음고와 리듬의 탈범위화는 이 오페라 내에서 계속해서 역동적으로 진행한다.
필립 글래스는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작곡가이다. 그의 역작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초상 오페라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으로, 총 공연 시간 5시간에 달한다. 이 오페라의 대표적인 특징은 ‘줄거리가 없다는 것’인데, 나레이션과 시 낭송을 제외하면, 배우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이용할 이유조차 없다. 심지어, 그 적은 가사도 계명창이나 숫자를 중얼거리는 식으로 대체된다. 우주선, 자폐증, 법정, 기차 등 전혀 관련될 수 없어 보이는 것들의 병치는 현시대의 부정함을 연상시키면서, 목관과 건반악기 음색만을 이용하여 의도된 ‘빈 소리’를 표현한다. 그것은 다시, 공간 속에서 존립하고 있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물, 그 인물의 세계는 무한대의 시간을 살게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매튜 라이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뮤직 시어터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음악은 규칙적이지 않다. 정해진 형태나 최소한의 내러티브 없이 진행되는 이러한 오페라가 과연 과거의 오페라와 같은 매커니즘으로 연구될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현시대의 오페라를 연구하는 방식은 작품 내적 요인보다, 외적 요인에 치중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프로덕션 중 빌리 데커의 버전이 있다. 유명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의 폭발적인 성량과 인물들이 갖춘 현대식의 복장, 변하지 않는 단순한 무대 배경, 그리고 큰 시계만이 덩그러니 놓인 거실 등은 그들이 어떻게 현대의 ‘춘희’를 많은 대중에게 수용될 수 있게끔 ‘오페라화’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 결과이다.
단지 오페라의 아리아를 편곡하고, 그것의 결말을 바꾸는 등, 직접적으로 작품의 주파수를 건드려야만 시대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많은 간접적 특질과 시각적 연출에 있어서도 오페라는 ‘변화’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그 자체로 긍정, 부정을 떠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음악이라기보다는, 미술에 가까울 정도로 시각적인 것에 크게 의존한다. 기존의 틀로 담아낼 수 없는 일명 ‘초현실주의’ 오페라를 연구하는 것은 이제 아리아의 조성과 레치타티보의 패턴, 성악가의 벨칸토 창법에 초점을 두어서는 안되며, 그럴 수도 없다.
그렇다면, <해변의 아인슈타인>의 프로덕션을 어떻게 연구할 수 있을까? 이 작품에서 다뤄지는 ‘시간’은 매우 중요한데, 공연 예술이 한정된 공간에서 여러 가지의 시간을 다루기 위해 급히 배치된 소품의 위치를 바꾸고, 여러 색의 가벽을 준비해두는 것과 달리, 텅 빈 무대 위에 ‘조명’만을 이용하여 아인슈타인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것의 BGM처럼 다뤄지는 음악은 빠른 템포에서 무맥락적으로 느려지는 리듬에 이어, 정적, 다시 새로운 프레이즈의 고음을 들려주는 식으로 통일감을 버려낸다. 이 시대의 작품은 더더욱이나 프로덕션 연구가 학술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며, 작곡가의 학문적 배경은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과정’과 밀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