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졸라, 탱고, 클래식, 재즈가 수렴하는 곳
재즈는 장르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재즈를 음악적으로는 물론, 현상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분명, 재즈는 다른 것들과 구분되는 자기 고유의 특징을 가진 음악체계이자,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의 기원을 연구하는 것은 다양한 국가와 민족적 특성을 끌고 오게 하며 사회학과 인류사의 개입을 빼놓고는 불가능하게 된다. 노예들의 민요, 자조적인 읊조림, 사회비판의 해학적 표현 등 재즈를 설명할 수 있는 문구는 이렇게나 다양하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재즈라고 분류하는 음계나 형식, 조성적, 퍼포먼스의 양태도 이것을 다른 음악과 구분하는데 기여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이 모든 요인이 절대적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또, 전혀 재즈에만 한정된 작곡가가 아님에도 쉽게 재즈 작곡가로 혼동되는 음악가들도 존재한다. 나에게 지금까지 가장 ‘재즈’스럽게 들렸던 음악은 사실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피아졸라의 것이었다.
피아졸라의 태생적 배경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부 출생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의 외아들로 전해진다. 이후 유년기를 미국의 뉴욕에서 보내며 아버지가 물려주신 반도네온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처럼 재즈와 클래식을 유동적으로 오가는 작곡가도 또 없을 정도로 그는 20세기의 탱고와 재즈, 그리고 바흐나 슈만의 클래식 음악을 접목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그는 뛰어난 작곡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연주자였기에 그가 자신 있는 반도네온의 소리를 이용해서 음악계에 새로운 유행과 센세이션을 가져온 것이다. 그는 늘 정통적인 것에 반항했는데, 이는 꼭 그의 자의라기보다도 그가 속한 여러 환경의 영향으로 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피아졸라라는 한 명의 인간과 ‘재즈’는 그 자체로 닮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피아졸라는 20대가 되기까지 공식적으로 음악 이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남들처럼 유명 음악학교를 졸업했거나 제대로 음악을 학문적으로 접한 경험이 없지만, 아버지의 음악성과 자신의 음악 취향, 반복 청취, 연주 기량을 발휘하여 그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그런 그의 잠재적 천재성을 알아본 스승 히나스테라는 그에게 음악 교육을 해주고, 피아졸라는 기존에 자신이 지니고 있던 클래식에 대한 깊은 관심과 탱고 능력을 결합하여 다양한 연주회 음악과 영화음악을 작곡해가기 시작했다. 재즈 역시 마찬가지로 연주회 음악이자 영화음악의 형식을 입고 청중에게 다가간다. 생계를 부지하느라 하루종일 뼈빠지게 일하고 돌아와서 노랫말을 흥얼거리는 모습과 피아졸라가 정치적으로 독재 정권에 반대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소외’의 차원에서 연결될 수 있다.
TV에 출연하고 각종 카바레와 소규모 탱고 클럽 등을 전전하며 연주로 밥 벌어먹기 시작한 그는 춤음악에 재즈를 들여오고, 재즈에 클래식을 들여오는 식의 진정한 크로스오버를 실현했다. 시대와 시대의 만남인 퓨전, 그리고 장르와 장르의 만남인 크로스오버는 피아졸라 안에서 현시대의 새로운 의미로 재창발되고 있었다. 그는 또한 혼자서만 독립적으로 연주 활동을 하지 않고, 악단을 꾸려 우리가 재즈하면 떠올릴 수 있는 “클래식한 악기 구성에 그렇지 못한 소리”를 꾸준히 펼쳐나갔던 작곡가이기도 하다. 또, 심지어 그의 말년에는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전자음악, 잦은 이주 시도 중에 다시 정반대인 어쿠스틱 실내악의 음악 경향으로 돌아오는 등 시공간적, 음악적으로 모두 부유하는 삶을 살아갔다.
피아졸라는 전문 재즈 뮤지션이 아니다. 오히려 재즈와 클래식 중 한 곳에만 그를 걸어두고 음악사 책을 집필해야 한다면, 피아졸라는 후기 클래식, 글로벌주의 음악가라고 설명하는 것이 적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즈는 피아졸라와 분명, 공통된 교집합 속에서 존재한다. 게다가 재즈가 가진 다양한 요소의 결합과 ‘만남’은 그의 인생 자체를 비유해내기도 한다. 여태껏 이야기한 이 모든 것이 피아졸라라는 사람의 인생을 복합적으로 설명해내듯이, 우리는 관습적인 분류체계 속에 우리가 발견한 모든 음악 장면을 집어넣을 수 없다. 그렇기에 재즈를 ‘경계 짓는 일’ 역시 생각보다 무의미한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