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방패는 한 세트지
할머니는 우린 남매를 키워주셨을 뿐만 아니라, 내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전 과정을 묵묵히 함께해 주셨다. 삼촌들은 "이제 그만 고생하고 편히 쉬시라"며 자기들 집으로 모시려 난리였지만, 할머니는 요지부동이셨다.
“난 미뇽이네가 제일 편해!"라며 당신의 자리를 지키셨다.
할머니에게 퇴근하고 돌아온 우리 부부에게 직접 새 밥을 짓고 따뜻한 찌개를 끓여 먹이는 일을 거룩한 '미션'을 수행하듯 해내셨다.
할머니는 내 남편도, 내 아이도 너무 예뻐하셔서 늘 삼촌들의 질투와 불평을 샀지만 할머니의 지극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반응은 나와 사뭇 달랐다.
"이상하네? 할머니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데, 여보는 왜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지?"
남편은 난처한 듯 웃으며 속삭였다.
"자기는 어릴 때부터 먹어서 익숙하겠지만... 나 사실 할머니 요리하시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 다시다랑 미원을 막 쏟아붓듯이 넣으시더라고. 난 조미료 든 음식은 좀 안 맞나 봐. 난 자기가 조미료 없이 조물조물 만들어주는 게 더 좋아."
아무리 할머니가 정성껏 매일 해 먹여도 남편은 어쩌다 한번 내가 해주는 요리를 더 좋아했다.
진짜? 난 조미료를 그렇게 많이 넣는 줄도 몰랐어! 그래도 할머니가 정성껏 차려주시는 거니까 절대 아는 척하지 말고 감사히 먹어, 알았지?"
할머니에게 '맛있게 먹어주는 식구들'은 일생 삶의 보람이었기 때문에 할머니가 상처받을까 봐 나는 남편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내 남편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죽어도 거짓말을 못 하는 '노눈치 정직 증후군’이었다.
그날도 할머니는 퇴근한 손녀사위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진수성찬을 차려내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개와 정성 어린 밑반찬들이 상을 가득 채웠건만, 남편의 젓가락은 이상하리만큼 순무 깍두기 주위만 맴돌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이고, 이 서방. 상 위에 음식이 이렇게나 많은데 어찌 깍두기 하고만 밥을 먹는가? 자, 이것 좀 먹어보시게. 맛이 어떤가?"
할머니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반찬을 집어 남편의 밥그릇 위에 툭 올려주셨다. 나는 옆에서 남편에게 필사적으로 눈짓을 보냈다. '제발, 맛있다고 해! 그냥 눈 딱 감고 최고라고 해!' 하지만 내 간절한 신호는 남편의 ‘노눈치 정직 증후군’을 통과하지 못했다.
잠시 침묵하던 남편이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너무나 또렷하게 대답했다.
"...... 좀 짭니다."
순간, 식탁 위로 정적이 흘렀다. 할머니의 눈에 불꽃이 튀는 것을 본 나는 얼른 숟가락을 바삐 움직이며 분위기를 수습하려 애썼다.
"아냐, 할머니! 내 입엔 딱 맞아! 역시 할머니 밥이 최고야, 진짜 맛있어!"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할머니는 들고 있던 수저를 탁 내려놓으시더니, 서슬 퍼런 목소리로 단칼에 베어버리셨다.
"그럼, 먹지 말게!"
할머니는 뒤도 안 돌아보고 쌩하니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삐친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운함이 오로라가 되어 부엌을 가득 채웠다. 나는 기가 차서 남편을 쏘아보며 속삭였다.
"여보! 그냥 맛있다고 하면 좀 좋아? 제발 좀!"
남편은 억울한 표정으로 깍두기만 씹으며 중얼거렸다. "진짜 짠 걸 어떡해..."
창과 방패처럼 부딪히는 두 사람 사이에서, 나만 할머니의 닫힌 방문을 두드리며 동동 거렸다.
“할머니~ 할머니이~~ 할머니 음식이 최고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