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농구선수 1

by 미뇽작가

"엄마, 엄마의 첫사랑은 아빠야?"

내 질문에 엄마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아니지! 너희 아빠는 말이다, 내가 살면서 만난 남자 중에 가장 못생기고 키도 제일 작은 남자였어."


"푸하하! 그런데 왜 결혼했어?"


"그러게 말이다! 나도 그게 의문이야, 호호!"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며 그중 한 번은 결혼이라는 종착지에 닿기도 한다. 엄마에게 아빠가 첫사랑이 아니라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진짜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다. 엄마의 첫사랑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유명인이었다.


누구인지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 억측도 사양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모든 게 실화라는 것이다.


"고3 때였어. 버스 안에서 매일 마주치던 키가 아주 큰 남자가 있었지. 등하굣길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 남자를 보면서 친구랑 소곤대곤 했어. 내 친구 중에 키가 유난히 작은 애가 있었거든. 내가 그 친구를 놀리며 그랬지. '야, 넌 나중에 꼭 저렇게 키 큰 남자랑 결혼해야 해.' 그러고는 둘이 킥킥대며 웃었단다."


엄마의 입가에 풋풋한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그 남자가 우리를 가만히 쳐다보는 거야.

어머, 우리가 한 말을 들었나?

괜히 뜨끔해서 얼른 고개를 돌렸지.

그런데 버스에서 내려서 걷기 시작하니까,

글쎄 이 남자가 계속 나를 따라오는 게 아니겠니?"

설마 아니겠지, 가는 길이 같은 거겠지...

그렇게 애써 외면하며 집으로 걸어갔어.

그런데 이 남자가 우리 집 대문 앞까지 끈질기게 따라오는 거야. 떨리는 손으로 대문을 열렸는데,

뒤에서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지. '

저기요...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와, 대박! 그래서 어떻게 했어? 무서웠을 것 같은데?"


"그럼, 겁도 났지. 그런데 마침 대문 앞에 당시 네 살이었던 늦둥이 막내 동생이 딱 서 있더라고. 그 쪼매난 녀석이 왠지 든든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꼬맹이를 데리고 셋이서 근처 빵집으로 들어갔어. 하하!"


"푸하하! 데이트에 네 살짜리 막둥이 삼촌을 데려갔다고? 진짜 웃긴다!"


엄마는 그 시절이 어제 일인 양 즐겁게 말을 이어갔다.


"셋이 빵집에 앉아 통성명을 하는데, 그 애는 나랑 동갑인 고3이었어. 고교 농구선수라고 하더라. 매일 버스 안에서 나를 지켜보며 혼자 좋아하고 있었대. 그런데 그날, 내가 친구랑 웃으며 자기를 쳐다보니까 '아, 저 애도 나를 알고 있구나!' 싶어서 용기를 내서 따라왔다는 거야."


그날 이후, 키 큰 농구선수 소년은 거의 매일 엄마를 찾아왔지만 둘만의 오붓한 데이트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엄마는 늘 어린 남동생을 손을 잡고 나갔고, 4살 남동생을 가운데 두고 빵집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대화가 어찌나 잘 통하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둘이 한참 꿈이며 미래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내 옆에 앉아있던 동생 녀석이 갑자기 내 옷소매를 당기더니 그러는 거야. '누나! 나 응가!'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바지에 실례를 해버렸지 뭐니."


"눈치 없는 동생 녀석이 데이트에 따라와 응가까지 싸버렸지만, 그 애는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더라. 오히려 자기가 내 동생을 화장실로 번쩍 안고 가더니, 다 치우고 깨끗하게 씻겨서 나오더라고. 어린 나이였지만 참 듬직하고 마음이 깊었어. 난 그 애가 점점 좋아졌지."


"와... 고등학생이 그러기 쉽지 않은데. 진짜 괜찮은 애였네."




"그랬지. 그런데 몇 개월 만나다 보니 마음이 너무 커져서 덜컥 겁이 나더라고. 입시도 앞두고 있는데, 나 때문에 그 애 인생을 망칠까 봐 걱정도 됐고. 그래서 내가 제안했어. 우리 일단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 가면 다시 만나자고."


엄마의 이별 아닌 이별 선언에 소년은 눈물 콧물을 쏟으며 서럽게 울었다고 했다.

엄마는 겨우 그를 달래 약속 하나를 남겼다.


"우리 딱 하나만 약속하자.

다가올 크리스마스이브, 12월 24일 저녁 7시.

명동성당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