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내 귀에 입술을 바짝 붙이더니, 나만 들리게 속삭였어. '씨발, 처녀도 아닌 게 존나 비싸게 구네.'"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너희 아빠랑 나랑 나이 차가 꽤 났어도, 네 아빠는 평생 나한테 그런 쌍소리를 한 적이 없었거든.
그런데 내내 친절하고 젠틀하던 청년회장이 내 귀에 대고 그런 소리를 내뱉는데, 순간 놀라서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더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앞만 보고 있는데, 이 남자가 멈추질 않는 거야. 계속 귀에 대고 '그렇지? 너도 좋지? 씨발년, 존나 쌔끈하게 생겨서 튕기기는...' 하면서 입에 담지도 못할 소리를 계속 지껄였어."
상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엄마는 그 거룩한 예배당 안에서 홀로 지옥 같은 모멸감을 견디고 있었다니 순간 울화통이 터지는 거 같았다.
"예배만 끝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그 남자의 어깨를 쿡쿡 찌르더라고."
"설마...?"
"응, 할머니였어. 그날따라 예배에 늦으셨던 할머니가 뒷자리에 앉으셨다가, 마침 우리 바로 뒷자리로 오셨던 거야. 엄마가 돌아보니까 할머니가 아주 차가운 얼굴로 그 남자한테 입모양으로 그러더라. “
“ 나……. 와!. “
남자는 당황해서 못 들은 척 앞만 보고 있었지만, 할머니는 호락호락한 분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그 남자의 귀를 그대로 잡아 비틀어 낚아채듯 끌고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나도 놀라서 얼른 뒤따라 나갔지. 교회 식당 구석까지 끌려간 그 남자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어. “
교회 식당 구석, 할머니는 서슬 퍼런 눈빛으로 남자를 몰아세웠다. 낮고 조용한, 그래서 더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릎 꿇어."
남자가 당황해 주춤거리자 할머니의 호령이 이어졌다.
"꿇어! 안경 벗어. 손들어.
자 이제 똑똑히 말해봐. 뭐라고? 씨발, 처녀도 아닌 게... 그다음은 뭐였지? 어디 자세히 한 번 더 지껄여봐!"
"저, 집사님.. 그게 아니고요,
제가 잠시.. 돌았나 봅니다. “
남자의 변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의 손바닥이 남자의 뺨을 날카롭게 가르고 지나갔다. 쫙! 쫙!
"한마디 할 때마다 한 대씩이다. 말해봐, 뭐라고?"
할머니는 남자가 입을 뗄 때마다 사정없이 뺨을 후려쳤다.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순식간에 남자의 얼굴이 새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보다 못한 딸 영이(엄마)가 달려들어 팔을 붙잡았다.
"엄마, 그만해! 이러다 사람 잡겠어! 엄마!"
딸의 외침에 할머니가 딸을 돌아보았다. 그 눈에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딸에 대한 미안함이 뒤섞여 있었다.
할머니는 딸을 향해 악을 쓰듯 소리치셨다.
"시집가지 마! 가지 말라고!
결혼하기도 전부터 여자한테 이따위 쌍소리를 하는 새끼가 나중에 참도 잘해주겠다! 당장 헤어져!"
그러더니 다시 남자에게 달려들 기세로 손가락질을 하며 울부짖으셨다.
"너 이 개자식, 오늘 내가 너를 찢어발겨도 시원치가 않아! 당장 사과해! 우리 영이한테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 사과하라고!"
우아하게 시작했던 할머니는 결국 이성을 잃고 오열하듯 소리를 질렀다. 그 기세에 눌린 '엄친아'는 혼비백산하여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했다. 그날, 할머니는 딸을 지키는 가장 강인한 투사였다.
그 남자는 할머니와 엄마 앞에 넙죽 엎드려 싹싹 빌었고 다시는 엄마 곁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교회를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양가 모두 독실한 집안이라 예배를 거르는 건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결국 그는 예배 시간마다 쥐 죽은 듯 조용히 나타났다가, 축도가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도망치듯 자리를 뜨곤 했다.
청년회장이 하도 비굴하게 비는 통에 일단은 비밀로 해주기로 했지만, 우리 할머니는 그걸 가슴속에 묻어두고만 계실 분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아주 은근하고도 교묘한 방식으로, 오래도록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교인 한 명씩 붙잡고 은밀하게 입을 열었다.
"이건 정말 비밀인데, 자네만 알고 있어... 그 청년회장 녀석 있잖아. 글쎄 우리 영이를 짝사랑하다가 마음대로 안 되니까 우리 영이한테 세상에나, 그런 쌍스런 소리를 지껄이다가 나한테 딱 걸렸지 뭐야. 속닥속닥... 응, 그래, 자네만 알고 있어야 해? 정말 쓰레기 같은 놈이니까 조심해. 속닥속닥..."
"비밀이야",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마"라는 말은 소문을 퍼뜨리는 가장 강력한 날개였고 결국 교회 안에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할머니의 정교한 '작업'은 결국 초등학생이던 막둥이 삼촌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주일, 교회 복도에서 청년회장과 막둥이 삼촌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청년회장은 소문이 주일학교 아이들에게까지 뻗친 줄도 모르고, 평소처럼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삼촌에게 아는 척을 했다.
"어이, 막둥이 안녕? 그동안 잘 지냈니?"
친근하게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남자의 손길을 삼촌은 차갑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주변 사람들이 다 들릴 만큼 우렁찬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닥쳐! 이 아다 새끼야!"
(아다: 성경험이 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비속어)
복도를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꽂혔다. 청년회장의 얼굴은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고 당황해서 어색하게 웃으며 수습해 보려 애썼다.
"어... 막둥아, 그게 무슨 말이니? 장난이 좀 심한걸?"
하지만 삼촌은 한술 더 떠 남자의 면전에 대고 쐐기를 박았다.
"아다 주제에 누굴 넘봐? 꺼져! 아다새끼야. “
주변에선 큭큭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청년회장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인 듯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아하하, 우리 막둥이가 장난이 참 심하네!"라며 억지웃음을 지었지만, 삼촌은 멈추지 않고 눈알을 개그맨같이 굴리며 말했다.
"아다다다 다! 아다아다아다아다“
엄친아'라는 화려한 껍데기가 초등학생한테 무참히 박살 난 순간이었다.
결국 그 청년회장은 그날 이후로 교회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기세등등했던 그의 가족들조차 소리소문 없이 종적을 감췄다.
그런데 스물일곱 살, 과부 우리 엄마 영이의 진짜 연애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같이 들어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