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피우는 남자들 10

대망의 1위 -4

by 미뇽작가

동생들은 아버지 몰래 각자의 작전을 세웠다.

아버지는 “타이르겠다”라고 하셨지만, 동생들의 사전엔 ‘타이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누나가 겪었을 공포를 고스란히 돌려주기 위해 각자의 ‘특기’를 살려 고모부를 찾아갔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독수리 오 형제 중에서도 성격 급한 둘째였다. 그는 평소처럼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고모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모부, 저예요.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해요. “


남자는 의심 없이 약속 장소로 나왔다.

여전히 자신이 집안의 어른이라는 착각에 빠져 어깨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둘째는 평소와 달리 아무런 안부도 묻지 않은 채, 무서운 기세로 술잔만 비워냈다.

어색한 침묵과 서늘한 시선을 견디다 못한 눈치챈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야, 너 오늘 좀 이상하다? 그만 마시고 일어나자. 나 가볼게.”


그 순간, 둘째 입에서 낮고 굵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더 마셔. 먹는 거 좋아하잖아.”

싸늘하게 내뱉은 반말에 남자의 몸이 굳어버렸어. 평소 고모부를 따르던 상냥한 조카는 오갈데없었다. 남자의 얼굴 가까이 몸을 숙이며 나지막이 읊조렸어.


“우리 누나 따먹으려고 했다며?”


조카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가장 노골적이고 추악한 진실이 까발려졌다.


“……뭐, 뭐?”


“왜? 우리가 비밀이라도 지키려고 쉬쉬 할지 알았어? 네가 우리 누나한테 했던 짓,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들었거든.”


겁에 질린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씩 웃었다.


“뷰웅신.. 쪽도 못쓰는 게...”


찰싹!


비명이 나올 틈도 없이 남자의 고개가 왼쪽으로 거칠게 돌아갔다. 남자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뺨을 감싸 쥐기도 전에, 반대편에서 더 강력한 충격이 날아왔다.


찰싹!


연달아 터진 ‘양볼 싸대기’에 남자의 안경이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불이 번쩍 나는 고통과 함께 남자의 입가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왔다.




“아파? 우리 누나가 느꼈던 공포에 비하면 이건 간지러운 수준일 텐데? “


남자는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른 채 숨을 헐떡였다.

평소 순둥이 같던 조카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남자는 겁에 질려 있었다.


“고모부, 아니 개족같은 새끼야. 네가 감히 누굴 건드렸는지 알아? 우리 누나가 혼자 애 키운다고 만만해 보였냐? 네까짓 게 감히 더러운 주둥이를 놀릴 상대가 아니라고.”


둘째는 다시 손을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고, 남자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비참하고도 비굴한 모습이었다.


“한 번만 더 내 귀에 누나 울렸다는 소리 들리면, 그땐 이 정도로 안 끝나. 오늘 본 건 예고편이고, 내 밑으로 동생 둘 더 있는 거 알지? 걔들은 나보다 더 미친놈들이야. 조심해라, 밤길.”


남자는 이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건드린 것이 단순히 연약한 여자 한 명이 아니라, 그 뒤에 앞뒤 안 가리고 날뛰는 미친 다섯 마리의 맹수였단 사실을 말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퇴근길, 가로등 불빛조차 희미한 골목에서 셋째가 그림자처럼 고모부 앞에 나타났다.


“고모부, 까꿍? 반가워요, 반가워.”


장난스러운 말투와는 달리 셋째의 눈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고모부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셋째에게 이끌려 인적이 끊긴 어두운 공사장으로 끌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넷째가 커다란 드럼통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모부! 일찍 일찍 다녀! 우리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넷째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넷째야, 준비한 거 가져와.”


셋째의 명령에 넷째가 무거운 자루를 옮기더니 드럼통 안에 시멘트 가루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넷째가 투덜거리며 허리를 펴며 말했다.


“아, 진짜! 이런 힘든 건 왜 맨날 나만 시키는 거야?”


셋째는 허리춤에서 서늘한 빛을 내뿜는 연장을 꺼내 들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래? 그럼 네가 고모부 꽉 붙잡고 있어. 내가 깔끔하게 썰어버릴 테니까. 에헤이 움직이면 안 돼 고모부!

그럼 피가 튄다고! “


새파랗게 질린 고모부의 손목을 잡으며

“썰어서 드럼통에 넣고 시멘트 부어버리면 세상 누구도 못 찾아.”


셋째가 무표정하게 말하자 남자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뒤흔들렸다. 농담이라고 치부하기엔 두 조카의 눈빛과 공사장의 적막함이 지나치게 진지했다.


고모부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 셋째는 혀를 쯧쯧 차더니 양동이에 가득 담긴 물을 가져와 남자의 얼굴에 사정없이 끼얹었다.


"어이, 고모부! 아니, 뭐 이런 걸로 기절을 다 하고 그래. 재미없게."


남자가 차가운 물세례에 헐떡이며 눈을 떴다. 셋째는 남자의 바지춤을 보더니 낄낄거리며 비웃었다.


"에헤이, 고모부 이거 오줌 싼 거야? 아니, 이렇게 새가슴이면서 대체 무슨 배짱으로 우리 누나를 건드릴 생각을 했대? 사람이 분수를 알아야지, 분수를."


남자는 덜덜 떨며 뒤로 물러났지만, 등 뒤엔 차가운 드럼통뿐이었다. 셋째가 턱짓으로 넷째를 불렀다


"야, 넷째야. 고모부 정신 번쩍 드시게 스파링 한 판 해드려라."


기다렸다는 듯 넷째가 가방에서 권투 글러브를 꺼내 들었고 익숙한 솜씨로 글러브를 조이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고모부, 제가 요즘 운동 부족이라 좀 찌뿌듯한데 잘됐네요. 자, 가드 올리세요!"

퍽! 퍽!


묵직한 타격음이 공사장의 적막을 찢었다.

넷째는 급소를 피해 사정없이 샌드백 취급을 했다.

남자는 비명을 지를 기운도 없이 엉엉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을 기어 다녔다.


"살려줘…… 제발 살려다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죽을죄를 지었어!"


남자는 비굴하게 애걸복걸하며 공사장 바닥을 처참하게 굴렀다.


“그 사과를 왜 우리한테 해? 누나한테 직접 해야지.”


동생들은 남자를 인근의 인적 드문 공중전화 부스로 끌고 갔다. 넷째가 수화기를 강제로 남자의 귀에 밀착시키며 속삭였다.


“똑바로 해. 조금이라도 진심이 안 느껴지면, 오늘 진짜로 시멘트에 넣어서 젓갈 담가버릴 거니까. 알았어?”


남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영이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갈 때마다 남자의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윽고 영이가 전화를 받자, 남자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영이야…… 내가 죽을죄를 지었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미쳤었나 봐. 제발, 제발 한 번만 용서해 다오. 내가 정말 잘못했어……!”

수화기 너머 영이의 침묵은 길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들이 계속하라고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의 애걸복걸은 멈추지 않았다.


전화가 끊기고 난 후에도 남자는 한참을 흐느꼈다.

극도의 공포와 신체적 고통, 그리고 수치심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 고모부는 다음 날 결국 제 발로 병원을 찾아가 입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6인실 병동.

침대 주위로 커튼을 친 채 숨죽여 누워있던 남자는 환청처럼 들리는 발소리에 몸을 떨었다. 눈은 밤탱이가 되고 옆구리에는 붕대를 감은 채, 그는 이제 작은 바람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불쌍하기 그지없는 심신미약이 되었다.


그때, 굳게 닫혀있던 커튼이 거칠게 확 젖혀졌다.


"몰골이 말이 아니네, 고모부."


첫째였다. 그 옆에는 팔짱을 낀 채 무표정하게 서 있는 둘째가 있었다. 동생들보다 덩치가 크고 눈매가 매서운 두 형이 나타나자, 남자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 썼어.


“에그 살살 좀 하지. 애들이 버릇이 없다. 그렇지?”

둘째가 비아냥 거리며 말하자


"살려줘! 내가 잘못했다니까! 다시는 안 그럴게! 제발 때리지만 마라!"


하지만 예상과 달리, 첫째는 침대 옆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품 안에서 서류 한 장과 인주를 꺼내 테이블에 탁 올려놓았다.


"우린 동생들처럼 무식하게 폭력 안 써.

대신 우리는 기록을 남기거든."

"이건 각서야. 네가 우리 누나한테 저지른 추악한 짓들을 아주 상세하게 적어놨어. 모든 사실을 인정하며, 다시는 누나와 우리 가족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써. “


남자가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훑어보았다. 글자 하나하나가 자신의 목을 조르는 밧줄 같았다.


"여기에 지장 찍어. 만약 하나라도 어기면, 이 서류는 바로 경찰서와 고모, 그리고 네 회사 게시판으로 갈 거야. 조카 추행하려다 가족들한테 맞았다고 온 동네에 소문 내줄게. 어디 인생 끝까지 가보자고."


첫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누나를 보호하기 위해 이만한 장치가 없었다.

고모부가 주먹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의 추악한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니까!


남자는 말도 못 한 채 서류에 붉은 지장을 찍었고

첫째는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아직 안심하지 마. 우리 막내가 아직 안 왔거든. 걔는 우리 중에서도 제일 상또라이야."


다음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