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 2
K는 군 제대 후 철도청에 입사해 역무원이 되어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던 그에게, 그날의 소란은 평생 잊지 못할 운명의 신호탄이었다. 창구 너머로 여대생 무리가 표를 잘못 예매했다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소란스러운 소음 뚫고, 단숨에 그의 심장을 꿰뚫는 음성이 들려왔다.
‘영이다.’
수만 명의 인파가 오가는 서울역이었지만, K는 확신했다. 세월이 흘러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소리. 고개를 들어 확인한 그곳엔, 열일곱 살의 앳된 소녀에서 어느덧 성숙한 여인이 된 영이가 서 있었다.
K는 떨리는 손을 감추며 서둘러 그녀 일행의 표를 교환해 주었다. 머릿속은 온통 하얗게 변해버렸고,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간절하게 맴돌았다.
‘이대로 보내면 다시는 못 본다. 연락처, 연락처를 알아내야 해.’
“영아, 혹시 모르니까 연락처 하나 남겨줄래?”
표정을 숨기고 애써 덤덤한 척 건넨 말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영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수줍게 대답했다.
“저 혼자 쓰는 번호는 아니고요, 친구랑 같이 쓰는 자취방 번호예요.”
그녀는 하얀 종이 위에 꾹꾹 눌러 쓴 번호를 건넸다. MT 기차 시간이 촉박했던 영이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인사를 남긴 채 서둘러 플랫폼으로 뛰어갔다. 멀어지는 영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K는 손에 쥐어진 작은 종이 쪽지를 보물처럼 꽉 움켜쥐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 그날의 기차역은 현실이 아닌 꿈결 같았다. 영이는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보며 붉어진 뺨을 식혀야 했고, K는 교대 시간이 지나도록 가슴의 두근거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고요하던 자취방의 전화기가 정적을 깨고 울렸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K는 긴 안도의 한숨과 함께 미소 지었다.
“목소리가 그대로구나… 뭐 하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