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밤 Sep 03. 2022

이별 극복기①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사람마다 이별을 대하는 생각이나 방식이 다르다. 나의 경우 이별이 힘든 이유는 '이별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첫 번째 강박관념은 흔적을 지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원래는 없었던 것들이지만 오랜 기간을 거쳐 하나씩 생겨났고 이제는 내 일상의 전부가 되어버린 모든 것들을,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다시 지워내야 한다. 사진첩에는 온통 상대와의 추억뿐이고 SNS 또한 마찬가지이다. 상대의 얼굴이 노출된 사진을 올리지는 않지만, SNS 속 나의 모습들은 전부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알고 있다. 이미 지나간 인연과의 사진들을 지우는 것이 이별을 대하는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흔적들을 지워야 비로소 이별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리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사진들을 보면 자연스레 지난 추억들이 떠올랐고, 소중한 추억을 어떻게 지울 수 있지 하는 마음에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쉽게 지우지 못하는 내 모습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억지로 지우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새로운 사진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일주일 내내 친구들을 만났다. 당장 공부하기에만 급급한 나로서는 꽤 파격적인 행보였다. 친구들을 만나서 좋은 카페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술도 마시고 산책도 하면서 이별 이후 새로운 나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그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은 저 뒤편으로 밀려나고, 새로운 나의 모습이 그 공간을 채우게 되었다.


두 번째 강박관념은 상대의 잘못으로 인해 헤어진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슬퍼하거나 그리워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이다. 서로 잘 안 맞는다거나 마음이 식었다거나 등의 흔한 이별 사유가 아니라, 명백한 상대방의 잘못으로 이별했을 땐 굳이 슬퍼하거나 힘들어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건 굉장히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런 바보가 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나는 스스로를 똑부러지고 강단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이별을 겪은 이상 슬퍼하거나 괴로워하거나, 그리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이 날 때면 그를 잊지 못하는 내가 미련해서 한참을 괴로워했다. 이 생각들이 나를 지치고 힘들게 했고, 결국 나는 나를 제대로 바라봐야 했다. 힘들었다. 나의 인생을 걸 수 있을 만큼 내게는 가치 있는 사람과 헤어졌고,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슬프고 괴로웠다.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더 이상 내 옆에 없지만 내 머릿속은 항상 그로 가득 차 있었다. 내 감정에 최선을 다해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눈물지었다. 그리고 더 이상 이 감정들을 무시하려 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받아들였다.


세 번째 강박관념은 내가 선택한 그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함께 미래를 꿈꿨고, 그렇게나 특별하다고 여겼던 사람과 헤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나의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꽤나 행복했던 기억들이 어느새 추억할만한 가치도 없게 되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 선택이 정말 바보 같았구나, 하고 자책 아닌 자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 생각에 머물러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선택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가 나의 결론이다. 오랜 기간 함께 사는 부부나 가족일지라도 서로를 전부 알지 못하는데, 연애하는 동안 상대를 전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연애를 시작하기로 결정할 때에는 그에 맞는 적절한 이유가 있고, 인연을 끝맺을 때에도 그에 맞는 이유가 있는 것뿐이다. 처음부터 나쁘고 못된 사람을 선택한 내가 어리석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믿었던 그 사람이 변한 것이다. 그 이유를 나에게서 찾지 말자. 더 이상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이별을 맞이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