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무더위가 끝나갈 무렵 어느 초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여느 때처럼 야간에 근무하면서 만취한 환자나 보호자를 상대하는 일이 있었다. 보통 만취한 내원객은 통제가 안될 뿐만 아니라 과격한 행동이나 말로 인해 감당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상황까지 생기기 마련이다. 이번 이야기는 다행히 경찰에 신고하여 해결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내 생에 이런 만취한 환자를 볼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번 내용은 기독교 관련 이야기가 나오는데 종교와 기독교인에 대한 비하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님을 밝히는 바이다.
상황은 이랬다. 여느 때처럼 구급차에 실려오는 환자들을 응대하는데 구급차에서 환자가 내리자 중년 남성의 호탕한 큰 웃음소리부터 나기 시작했다. 거기서부터 난 심상치 않는 환자라는 걸 바로 직감하였고 보호자는 있겠거니 했으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결국엔 접수를 도와주었다. 여기서 오게 된 이유를 들어보니 술 먹고 만취한 상태에서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에 넘어지셨다고 한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랑 주먹다짐을 안 한 게 다행일 정도다. 문진을 보는 내내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응급실 내 소리를 가득 채웠고 자신이 여기에 오게 된 건 하나님의 뜻이라며 반복적으로 얘기하는 걸 보아하니 신앙심이 매우 두텁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문진이 끝나고 센터에 들어가서 진료를 대기하고 있는데 예상한 대로 통제가 힘들었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는 물론이며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하면서 혼자 화장실 가겠다고 막무가내로 진료 센터에 나가려고 하고 정신없었다. 결국에는 의료진의 요청으로 화장실까지 동행해 드렸다.
화장실을 가는 짧은 시간 동안 환자분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는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이 질문을 받자 아무래도 보안이다 보니 나이가 어리면 만만하게 볼 수도 있고 하니 지금 내 나이보다 살짝 높여서 말했다. 그랬더니 그는 호탕한 웃음과 함께 아들 같아서 한번 물어봤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내 엉덩이를 한 대 쳤다. 강도가 너무 쌨고 아팠다. 충분히 폭행으로 걸고 신고할 수 있었지만 뭐.. 나쁜 의도는 아니기도 하고 그래서 참고 웃었다. 늘 느끼지만 보안요원은 극한직업인 거 같다. 그리고 검사하기 전에 수납을 해야 해서 보호자께 연락을 드려보니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수납 관련해서는 원무과의 일이기 때문에 원무과 선생님들께 맡기고 환자분은 자꾸 자신은 괜찮다고 집에 가겠다고 한다. 의료진들도 어쩔 줄 몰라하고 나 또한 그 상황을 보고 있자니 답답해서 그가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인인 점을 이용하여 설득하기 시작했다.
“환자분? 여기에 오시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죠? 여기서 다친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진료 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내가 던진 결정타에 환자분은 갑자기 환하게 웃으시더니 “맞아! 내가 여기 온 거도 하나님의 뜻이고 자네 말대로 여기서 치료받는 거도 그분의 뜻이지! 어서 들어가지!”라고 큰 소리로 말씀하시고 몇몇 내원객들은 내 대사에 웃음을 참고 있었다. 참으로 민망하다고 해야 할지… 부끄럽다고 해야 할지… 그를 휠체어에 태우고 진료센터로 향하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가 찬송가를 부르자 주변 시선이 전부 나를 향하기 시작했고 난 그거 고개 숙이고 진료센터로 모셔다 드리고 내 자리로 복귀했다. 항상 취객이랑 상대하게 되면 통제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부딪히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 일은 뭐랄까.. 스트레스받거나 기분 나쁜 일은 없었고 황당함만 가득했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