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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센트 Mar 21. 2024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지금까지 근무하면서 여러 내원객들을 상대해 왔지만, 이 환자만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해 주었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난 여전히 지금까지 힘들었던 환자 중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그때 당시 같이 일하는 동료 선생님은 쉬는 시간이어서 나 혼자 근무했을 때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응급실 정문에서 어느 한 중년 여성이 욕설과 함께 소리치고 있는 모습에 당황해서 달려갔다. 늘 그렇듯, 내원객의 난동을 제지하는 게 우리의 업무이기에 진정시켜보았지만 환자는 계속 화내고 있었고 보호자 또한 내원하지 않아서 참으로 난감했다. 상황을 듣자 하니 본인이 음주운전을 하고 실수로 전봇대에 들이박고 직접 신고했단다… 그거 듣자마자 당황하고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환자는 나 혼자서 제지가 안 되는 상황이었고 결국엔 근무할 때 항상 착용하던 바디캠의 전원을 켜서 증거를 남기기 시작했고 녹화를 시작하기 전에 환자에게 경고를 남겼다.


(※바디캠을 이용하여 병원 내 난동이 생길 경우 녹화하여 법적인 증거를 남기기 위해 착용하고 근무를 한다.)


“환자분 지금 녹화 중인 거 법적으로 증거가 남을 수 있습니다.”


바디캠의 전원을 켜면 내 경험상 딱 세 가지 반응으로 나뉜다. 왜 녹화하냐고 따지는 사람. 자기가 잘못한 걸 인지하고 진정하는 사람, 그리고 당당하게 녹화하라고 하는 사람 이렇게 나뉘는데 이 사람은 역시나 다를까.. 세 번째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내가 경고가 하니 당당하게 찍으라고 화를 내는 그녀.. 이번 근무는 편하게 일하기 글렀구나 직감했다. 진료 이력을 보니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아있는 환자였고 문진 하는데 계속 욕하고 화내고 그래서 욕하지 말라는 경고를 몇 번을 했는지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계속했던 거 같다. 나 혼자 하기 지쳤는지 옆에 계신 간호사 선생님들도 도와주시더니 좀 조용해졌다.


문진이 끝난 이후로 새벽에 조용했었지만 문제는 아침이 되고 나서였다. 쉬는 시간이 끝나자 울리는 호출… 그 사람 때문인가 짐작하고 달려갔더니 예상한 대로 흡연하고 싶다고 간호사 선생님들께 화를 냈다고 한다. 본래라면 진료하는 도중에 흡연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 물을 포함한 어떠한 것들도 취식을 못하는데 일단 진정시키기 위해 흡연할 때 같이 동행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상황을 듣고 내가 동행해 주기로 하였고 흡연장으로 가는 길에 얘기를 들어보니 자신은 유흥주점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왔고 없는 환경에서 자신의 아들을 키우면서 생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어느 날 자신의 아들이 모종의 이유로 독립을 하니 자신을 안 찾아온다고 서운함을 표출했는데 이때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당황스럽지만 환자를 달래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뜬금없이 자신은 담배를 비싼 거 사면서 세금을 많이 내는 애국자라고 자부하 지를 않나.. 흡연이 끝나고 약간의 소동과 함께 첫 번째 만남은 끝났고 문제는 두 번째로 만났을 때이다.


전 편에 민원 들어온 사건 그다음 날이었다. 평소처럼 출근하고 인수인계를 받는 도중에 낯이 익은 이름이 보였다. 제발 내가 아는 환자가 아니길 빌었다. 절실하게 빌었다. 역시 기대는 져버리지 않았고 그 환자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면서 반겨주었다. 다행히 퇴원 직전이어서 긴 시간을 보내지 않았지만 문제는 저번처럼 흡연을 원해서 동행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그런지 갑자기 내 팔짱을 끼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불쾌함과 수치심이 쌓이기 시작했고 팔짱까지만 하면 다행이다. 하나 더 있었지만 차마 글로 표현하기엔 매우 불쾌하기 때문에 생략하고 친하지도 않으면서 애칭으로 부르고 심지어 조기퇴근해서 같이 춤추고 한 잔 하자고 한다. 결국 퇴원하고 수납까지 마치고 나니 자신의 명함을 나에게 건네자마자 난 바로 거절했고 기가 제대로 빨릴 대로 빨려서 집에 가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날 이후로 그 환자를 본 기억이 없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듦의 무게를 참고 살아가지만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싶은 마음은 다 가지고 있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위로받고 공감받는 그런 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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