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 씨, 집 구했다면서?
이제 서울 사람 다 됐네. 축하해!”
“아… 네. 집을 구하긴 했는데,
반지하에다가 하나뿐인 창문은 방범 철판으로 막혀 있고
커튼까지 쳐두니까 형광등 안 켜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제 집이 있으니 좋긴 합니다.”
서울 외곽의 지하철역에서도
한참 걸어야 도착하는 나의 첫 자취방은
주인 할아버지만큼이나 늙어 보였다.
창문은 처음 본 순간부터
이미 제 기능을 포기한 듯 틀어져 있었고,
도어록은 두 번에 한 번은 열리지 않았으며
화장실 문은 힘껏 닫아야만 걸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형광등만큼은 멀쩡했다.
이 집의 유일한 빛.
지이잉— 하고 낮은 울음 같은 소리를 내며
형광등은 희고 선명한 백색으로
이 사각형 방의 낮과 밤을 나누고 있었다.
주말 아침.
도어록을 새것으로 교체하던 중
주인 할아버지께 물었다.
“수리도 거의 끝나가네요.
안 고장 난 게 없을 정도였는데, 그래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뭘… 집이 오래돼서 내가 더 민망하지.”
“근데 형광등은 미리 갈아주셨나 봐요,
이상하게 그건 새것처럼 밝아서요.”
“형광등…? 가만있어 보자…
저걸 내가 언제 갈았더라…”
할아버지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아마도 전에 살던 사람이 한 번쯤 갈았겠지 뭐.”
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느린 걸음으로 돌아갔다.
집 안의 다른 것들은
가전이든 가구든 한 번씩은 고장 나거나
교체가 필요했지만,
형광등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멀쩡했다.
불빛이 줄지도 않았고
지지직거리는 소리도 없었고
흔들림도 없었다.
형광등의 백색 불빛 아래
네모 반듯한 이 작은 방은
그림자 하나 없이 밝게 채워졌다.
조금의 성취감과
대부분의 불합리함과 피곤함으로 얼룩진 서울 생활에서
형광등만은 참으로 성실했다.
그 조악한 방 안에서,
아니 나의 일상에서
유일하게 필요한 순간마다
제 역할을 해주는 존재.
지이잉 하는 울음소리 하나로
언제나처럼 인공적인 백색으로 방을 채웠다.
그 빛은 너무나 환해서
그림자가 없었다.
형광등 아래에선
컵도, 손도, 책상다리도
그림자를 갖지 못했다.
정확히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게 아니라
모든 방향에서 동시에 조명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엔 그런 빛이 안심됐다.
커튼 쳐진 창문,
신선한 바람도 들지 않는 반지하의 공기 속에서
이 형광등은 내 하루를 언제나 낮처럼 만들어줬다.
문제는 ‘언제나’ 낮처럼 만들어준다는 것이었다.
형광등이 켜져 있는 한 아침인지 밤인지
알 수 없었다.
형광등을 끄고 싶었지만
방안의 유일한 빛이기에
끄는 순간 방은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마치 그동안 방을 점령해 온 백색 빛에 대한 보복이라도 하듯
어둠의 찐득한 아가리에 통째로 삼켜진 듯했다.
시간이 흐르고
이 방이 내 집으로 느껴질 때 즈음
조금씩 머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집에서도
사무실을 연상시키는 백색 빛이
잠들기 직전까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햇빛을 받지 못해서 그런가 싶어
휴일엔 최대한 밖에 나가 햇빛을 쬐려 했다.
이상하게도
불 꺼진 방안이 싫었다.
뭔가.. 가..?
애써 그런 생각을 무시하며
친구들을 만나고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형광등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내가 나갈 때 켜뒀던가…?’
백색.
너무 밝은 그 빛은
내 몸속으로 파고들어
머리까지 밝혀내려는 듯했다.
방 안이 환할수록
기이하게도
내가 느낀 것은 어두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