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크 겐트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찬란한 문명을 일구어낸 그립톤의 미덕은 ‘성실’이었으며,
그립톤의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올바른 성장’을 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는 모든 크립톤인들이 그렇듯
수년간 정부군에서 필수 복무시간을 채우며,
그와 비슷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흔들리는 자아를 다잡으려 했다.
그리고 그것은 꽤 효과가 있어서,
훌륭한 그립톤 성인을 수없이 단조해 내었던,
정부군의 모루에서 겐트 또한
어설픈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정부군의 군홧발이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 사회로 쫓아내었을 때,
그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어린 시절부터 느껴온 검은 것의 허기로 가득 찬 텅 빈 눈과
존재 의의를 향한 고뇌, 끝을 맺지 못한 몇 번의 어설픈 선택으로
이미 착실한 그립톤인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다른 젊은이들과의 격차는 상당히 벌어져 있었다.
겐트는 그 격차를 메꾸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가 인생이 휘두르는 주먹에 얻어맞아,
부러진 코뼈에서 피가 울컥울컥 솟아오를 때였다.
그만하면 되었다는 듯 인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타난 운명의 여신은 그의 손에 준비된 직장을 내밀었다.
그가 얻은 직장은 불행하게도,
검은 것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누구보다도 빨리 보고서를 정리해야 했고,
그의 고객과 상사가 원하는 답을 재빨리 알아채야 했으며,
그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말과 감정을 조합해야 했다.
성실한 그립톤인을 향한 여정은 겐트 혼자만의 힘으로는 버거운 것이었다.
겐트는 이 일에 어울리는 전문가, ‘그것’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검은 것은 성실했다.
검은 것은 완벽했다.
검은 것은 고객과 상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즉각적으로 알아차렸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검은 것이 원하는 대로 느끼는 듯했다.
그것이 작성한 보고서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그것이 보낸 이메일은 언제나 적절했고,
그것이 내뱉는 말들과 간단한 유머들은
고객과 동료들을 사로잡았다.
“겐트 너 요즘 정말 괜찮은데? 그대로만 해”
“이제 너도 우리랑 같은 사람이 다 됐네”
“겐트 오늘 끝나고 한잔해야지”
사람들은 말했다.
유능한 그에게 주변 사람들이 건네는 애정과 관심 뒤에는,
조용히 그를 응시하는 그것의 눈동자가 보였다.
검은 것과 함께하는 직장생활은 순조로웠다.
이를테면, 매일 아침 검은 것은 침대에 달라붙은 겐트를 일으켜 세웠다.
이따금 겐트는 머리를 정리하지 않고 답답한 넥타이도 하지 않은 채 출근하려 했지만,
검은 것은 그것의 신성한 일터에 부스스한 머리를 한 머저리가 끼어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그런 작은 피곤함과 제약은 너무나 사소한 것이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검은 것은 나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
최근에 그것은 정말 협조적이었고 그의 직장생활을 완벽히 보조하고 있었다.
”요즘은 그것과 내가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
아아 마침내, 흔들리는 자아와 존재의 이질감 내면의 고통으로 얼룩진 그의 인생에서
반복되는 일상과 안정감, 주변 사람들의 인정은 그의 전신을 짜릿하게 타고 흘렀다.
늦었지만 드디어, 성실한 그립톤인의 궤도에 오른 것이었다.
이제 이 낙원에서의 하루하루를 40년간 반복하면 될 것이었다.
40년 후에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아줄 것이었고,
그의 인생이 얼마나 성실했는지,
그가 얼마나 잘 견뎌 냈는지를 이야기할 것이었다.
그가 그렇게 고대하던 책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죽음이 그의 고통스러운 삶의 불을 끄고
탄력 없이 늘어진 그의 이마에 굿 나이트 키스를 해줄 것이었다.
겐트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잠에 들었다.
내일이면 또다시 낙원에서의 하루가 시작될 터였다.
그의 인생은 마침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침내…”
도로의 마지막 빛 마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깊은 밤.
낙원은, 깊고도 조용했다.
에메랄드빛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잠들어 있는 겐트.
그의 귀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건져 올려졌다.
막 깨어난 그의 귀는 먹먹했다.
바닷물과 모래알이 귓구멍을 타고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천천히,
웅웅 거리는 공기의 떨림, 아니 맥박의 울림.
어딘가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잔향.
현실에 건져 올려진 귀가 점차 주변 소리를 담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낯선 숨소리가 들려왔다.
깊고 낮게 떨리는 숨.
숨이 새어 나오는 목구멍,
억누른 듯한 울림.
웃음이다.
그것은, 억눌려 있었다.
숨죽인 채, 간신히 터져 나오지 않도록 조절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억제된 형태가 오히려 더욱 끔찍했다.
미세한 떨림이 점점 더 커졌다.
짐승의 부풀어 오르는 심장을 씹어 뜯어내는 기쁨.
그 소리는 귀에만 속삭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손끝을 따라 여린 살갗을 타고, 피부를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갑자기 멈췄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고요함이 폭발하여 방 안을 삼켰다.
겐트는 천천히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보았다.
어둠 속에서,
그것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입꼬리가 찢어지듯 솟아올랐다.
그러나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마치 터질 듯한 웃음을 간신히 참는 듯한 모습.
그것은 더 이상 공허한 표정이 아니었다.
휘어진 눈에는 죽음의 생기가 차올라 있었다.
겐트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천천히,
오래된 창고의 삐걱이는 문이 열리듯,
그것의 입술이 열렸다.
입술은 귀까지 찢어질 듯이 벌어졌다.
그 안에서 어둠조차 빨려 들어갈,
텅 빈 심연 같은 그것의 목구멍이 드러났다.
구역질 나는 악취와 함께
그 입 안에 숨겨져 있던, 붉은 혀가 뒤틀며 나타났다.
그것이 입을 쩍 벌리는 순간,
겐트는 온몸이 굳어 버렸다.
“마침내.”
그것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사람의 단어를 흉내 내는 쉰 소리가 새어 나왔다.
순식간에, 겐트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검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모든 감각이
끈적한 어둠과 그것의 체액에 묻히고 있었다.
그는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이미 너무 오래전부터 그와 함께였던 그것이,
마침내 그를 통째로 삼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