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정원

by 오늘핌

대저 토마토를 떠올리니 지금은 없어진 외갓집이 떠오른다. 외가 근처엔 김해공항이 있어 외가로 향하는 길에는 항상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동차 뒷좌석에 누워 잠을 자고 있던 어린 나는 비행기 소리가 들리면 눈을 떠 채비하곤 했다.


군데군데 철이 벗겨진 하늘색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집 한가운데 당당히 위치한 조롱박 모양의 텃밭인지 화단인지 모를 정원이 맞이한다.


그 속엔 꽃으로는 나팔꽃과 해바라기와 봉선화와 패랭이꽃들이 있고, 작물로는 방울토마토와 고추와 애호박과 늙은 호박과 그리고 오이가 있었다. 나무로는 박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넝쿨이 많이 자라 지지대를 세워 지붕을 만들었더니 온 지붕을 빠르게 덮었고, 어디선가 아이비가 자라나 지붕이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했다.


보다 못한 엄마가 어디선가 장미 모종을 구해와 '장미가 있으니 훨씬 이쁘네'하며 흡족한 웃음을 지었으나, 내가 보기엔 박과 장미와 아이비가 공존하는 그 언발란스함에 웃기기만 했다.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는 내 서랍장처럼 정체성 없이 각종 작물과 꽃들이 엉기성기 심어져 있는 그 정원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악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정원이라 함은 모네의 정원처럼 알록달록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과 가지가 잘 다듬어진 나무들이 서로 조화로운 구도로 멋들어지게 심어져 있는 이미지에 가깝지만, 그곳은 그런 종류의 정원이라 보다는 화단과 텃밭의 중간 정도 되는 도시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딱 맞는 놀이터이자 실험실이었다.


여름방학 때면 사촌들과 모여서 화단에 있던 작은 돌멩이로 꽃잎을 짓이기며 소꿉놀이를 하고, 한낮의 무더운 더위에는 마루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며 어른들이 내어주는 수박을 먹으며 누가 수박씨를 제일 멀리 뱉을까 하는 내기 따위를 하며 정원을 향해 무수히 많은 씨를 뱉어냈다.


뱉어낸 씨 중엔 실제로 발아해서 다음 해 여름 작은 수박이 자라곤 했다. 비록 작아서 먹지는 못했지만 그 풍경이 신기했던 우리는 그 후로 참외와 대저 토마토와 복숭아와 감자와 옥수수를 먹고 남으면 꼭 껍질과 씨를 화단 구석에 심곤 했다.


그 후로 십 수년이 지나 외갓집 일대가 재개발되어 보상금을 받고 이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비로소 나는 누군가에게 뽐낼만한 화려한 정원은 아니지만 매년 여름마다 다채로운 색깔과 좋은 향기와 맛있는 열매들로 우리의 유년시절을 즐겁게 해 준 아름다운 정원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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