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저토마토

by 오늘핌

2025년 여름, 근 10년간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되던 해에 만삭이었던 나는 매일이 힘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남산만 한 배로 걷기도, 먹기도, 자는 것도 불편했다. 동이 트기 전 아직 날이 까무잡잡한 틈을 타 간간히 산책을 하곤 했지만 거의 쓰러질뻔한 일을 겪고는 외출을 포기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다니던 직장도 출산 4주를 앞두고 출산휴가를 내서 하루하루 시간을 죽이는 것이 더 곤욕스러웠던 나는 진통이 오히려 반가웠다.


진통이 시작되자 '이 지긋지긋한 임신 기간도 이제 끝이군'하며 홀가분한 심정으로 출근한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미리 싸둔 출산가방을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강렬한 햇살 사이로 무성한 나무 이파리들이 번쩍번쩍거리던 그날의 후덥지근한 열기는 그대로 분만실로 전해져 왔다.


분만실은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지만 바깥 더위 때문에 그런지 신음소리와 고통으로 응집된 나의 열기 때문인지 분만실의 열기도 바깥과 별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진통을 겪으며 죄 없는 남편에게 오만 짜증을 내고 고통에 찬 포효를 하고 의료진들에게 한탄을 하며 버틴 결과 여섯 시간 만에 불고구마 같은 딸을 낳았다.


아기를 낳고 입원실로 오니 문에서부터 과일 냄새가 흥건히 풍겨왔다. 탁자에는 과일바구니 두 개가 덩그렇게 놓여있었다. 남편과 나의 회사에서 발 빠르게 과일 바구니를 보내준 것이다.

바구니에는 커다란 멜론과 예쁜 노란 망고와 애플망고 그리고 새콤 달달한 냄새를 풍기는 골드키위와 샤인머스캣과 잘 익은 아보카도가 한 알 한 알 고급 한지로 곱게 싸여 있었다.


그 선물은 과일이 맛있기로 유명한 모 백화점에서 온 것으로 맛은 당연히 보장되어 있을 터였고 비싸고 탐스러운 과일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과일 냄새를 맡은 그 순간 나는 흑녹색의 울퉁불퉁 못생긴 대저토마토가 너무나 생각났다.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이 지역에서 재배되는 토마토는 지역명에서 유래해 대저토마토라고 불린다.

대저동이 외갓집인 나는 어릴 때부터 대저토마토를 먹으며 자랐다. 아마 내 인생 최초 토마토는 대저토마토였을 것이다. 그래서 내겐 토마토라함은 방울토마토나 찰토마토보다도 대저 토마토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매년 대저 토마토의 계절이 오면 지금은 없어진 외갓집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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