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놀이가 아니려면
난 배우러 온 게 아니니까
나는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기업 타이쿤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니다.
성장하고 배우러 온 건 더더욱 아니다. 성장은 결과다.
성장은 내가 우리 팀에 성과를 내서 얻은 결과다.
배움은 내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한 과정에서 당연히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너에게 정말 좋은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어'
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좋은 경험이란, 훗날에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어떤 레슨을 얻었다는 의미지, 지금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커리어?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걸 따지면 내가 이 게임에 올인 배팅을 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커리어는 현재를 하나의 'step'으로 여기는 것 아닌가. 내 커리어의 시작과 끝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극단적이고 너무 성급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안다, 인생은 어차피 배팅이다. 적어도 욕심이 많고, 평범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배팅이다.
후회를 가져갈 수도 있지만, 결국 내게 확실한 행복과 만족을 줬던 것은 큰 리스크를 안았던 선택들이다.
돌아보면, 내 삶에 급진적인 상승 곡선을 그려줬던 의사결정들이 늘 논리적이고, 계획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19살 때, 아 모르겠다- 공부고 뭐고 일단 나가~ 라고 생각하며 나간 학생회장 선거.
학창시절의 학생회장 경력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 하겠으나, 초-중-고 학생회장을 했던 경험은
나의 첫인상과 이미지를 내가 원하는 대로 전달해주는 좋은 소재가 되었다.
20살 때, 아 모르겠다- 일단 끊어놓고 다니면서 고민해보자고 생각하며 결제한 재수학원.
고려대 입학해서 얻었던 것은 너무나도 많다. 가장 큰 것은, 지금의 팀에 합류한 것과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지인들이다.
22살 때, 아 모르겠다- 지금 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것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중도휴학.
성인이 되고 난 후 형성된 내 정체성의 많은 것들이 그 기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 '아 모르겠다~'로 시작한다. 크고 중요한 의사결정이라고 하여 논리적으로 모든 것을 따지며 계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건 편견이다.
내가 최선을 다할 땐 어떤 모습이었을까.
해커톤이 끝나기 40분 전,
수능 시험지 제출 10분 전,
대회 준비하며 교수님들을 뵙기 위해 이곳저곳 뛰어다녔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이고 어떤 감정이었을까.
다 지난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내 상태? 모습? 감정? 기억이 안나고,
그 순간에 내가 어떤 걸 하려고 했었는지만 기억 난다.
내가 수정하던 코드 내용과 갑작스럽게 났던 오류의 이유,
마지막으로 답을 고칠지 고민하던 문제,
뛰면서 이동할 때 빠르게 훑었던 교수님 논문 초록.
지금의 나도 그래야한다.
오늘을 감성적으로 회고할 게 아니라,
내가 어떤 걸 하려고 했었는지. 내가 어떤 걸 진짜로 했는지.
조금은 초조하게, 벅차게 뛰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