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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드로 Feb 10. 2024

EP. -1 29살의 내가 너에게 남기는 말

생각보다는 이른 타이밍이지만, 가끔은 심장이 시키는 게 정답일지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첫 줄인데도 쿵쾅거리는데, 이걸 보내고 나서는 얼마나 심장이 빨리 뛸지 감도 잡히지 않네.


만에 하나 다시 얼굴을 보게 된다면 정말 심장이 터질 만큼 뛸지도.


너무 감성적으로 글을 시작하면 글 자체가 읽기 싫어질 수도 있으니 단조로운 말투로 써야겠다.


사실 이 마지막글은 여러 번 수정하고, 계속 수정해서 완벽하다 싶을 때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조각이 맘에 들지 않아 계속 깎다 보면 조각 자체가 사라지는 법.


그래서 조금은 어설프고 엉성해도 그냥 써보기로 했다.


이제 다시 그녀에게, 아니면 너에게 쓰는 말을 시작해 볼게.


고맙다. 네가 없었더라면 나는 자그마한 성취를 맛보지 못했을 것 같다. 너로 인해 시작한 복수전공이 교수님께 잘 어필돼서 인공지능 연구소에도 출근하게 되었고, 너와의 헤어짐이 내 생각을 조금은 더 깊게 만들어 준 것 같아 고맙다.


너와의 반복된 이별의 원인을 해결한 것 같아 널 다시 만나려고 한다. 물론, 원인이 해결되었다고 하여 그때 네가 느꼈을 상실감, 허탈감, 배신감, 허무함과 같은 감정들이 사라지진 않겠지.


감정과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는 법이니, 나쁜 감정보다 좋은 감정들을 서로 주고받는 연애를 너와 하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내가 헤어지자고 하고 내가 다시 만나자고 하는 것이니,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이제는 방황이었다는 소리로 도망가는 것이 아닌, 진짜 이유를 말해주려고 한다.


무서웠다. 우리의 관계를 이어나가려면 나는 여러 가지 산을 넘었어야 했는데 그 산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성공한 케이스는 보이지 않고 실패한 케이스만 보였으며, 내 핸드폰의 검색창은 항상 "개발자 포기, 개발자 인공지능 대체, 개발자 국비교육 단점" 등 여우의 신포도가 가득했다. 해보지도 않고 도망간 것이지


그래서 모든 걸 버리고 도망갔고, 그 안에 네가 포함되었던 거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그때는 난 내 미래계획을 조금 더 객관적이고 구체적, 현실적으로 짜서 너와 상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어리석었다.


지금의 나는 앞으로 3년 정도의 로드맵이 생겼다.


현재 연구하고 있는 랩에서 6개월 동안 교수님께 받은 국가과제를 처리하고, 해당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대학원에 컨택 혹은 지금 랩에서 석사를 취득 후 취업하는 것이다.


여러 취업 사이트에서 내 연구실에서 다루는 기술 스택을  채용조건으로 요구해서 취업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설령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난 해결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만 나이 30살에는 석사 졸업 후 연봉 5000(기본급) 이상을 받으며 서울 또는 판교 근처에서 일하는 것이 목표이다. 처음 시작은 스타트업에서 하다가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이 직장 커리어의 로드맵이다.(이걸 로드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너와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많이 고민해 봤어.


혹시나 내가 과거의 추억에 빠져서 미래로 못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제일 컸지.


네가 그리워서 널 다시 만날 수는 있지만, 너와 행복했던 지난 시간이 그리워서 널 만나고 싶지는 않았어.


넌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존재이지만,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지기 마련이니까.  


너와의 일상이 돌아온다면, 어려움을 극복했던 경험으로 전보다 더 경제적, 심리적으로도 안정된 연애를 약속할게.


만일 네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거나, 잘되어가고 있다면 이걸 보내는 것이 굉장히 실례가 되겠지.


내가 없는 것이 네가 더 행복하다면 난 그걸로 만족하고 이제는 너와는 다른 길을 걸어가려고.


내가 너에게 가진 온갖 미련을 이 글에 적는 것보다, 앞으로 내가 네 길에 없을 것이라 깔끔하게 말하는 게 어쩌면, 정말 어쩌면 널 위한 나만의 배려라고 생각되어서.


아직도 널 정말 어떻게 배려하는지는 잘 모르는구나.


나한테 너는, 지난 5년간 내 세상이었다.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고, 네가 "자기 세상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날 세 번이나 버리는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 세상이었다. 세 번이나 버린 것은 어쩌면 힘든 사람이 자살을 하는 것처럼 세상을 떠나는 행위였겠지. 세상을 떠났지만 그럼에도 네 세상은 끝나지 않았고, 그래서 다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네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더 말하고 싶은 것이 분명 있지만, 내 마음을 여기 전부 표현하는 건 다 결국 나 편하자고 하는 말이고, 이 글은 너한테 하는 말이니까 이쯤에서 마무리할게.


네가 이미 결론을 내리고 이 글을 읽을지, 아니면 이 글이 네 생각을 좀 더 하게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은 고마웠고, 미안했으며, 온 맘 다해 널 사랑했어.


고마웠고


미안했고


사랑해


지금까지 "세 번 배신했고, 인연을 잃었다"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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