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 글의 마지막이 보이네요. 다음 에피소드를 작성하고 이 책은 업로드를 중단할 계획입니다.
단조로움, 요즘 제 삶은 단조로움 그 자체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버지 차를 타고 함께 출근하고, 아버지 회사 앞의 교대역에서 내려서 병원의 연구소로 출근한 다음, 과제연구를 하다가 퇴근, 퇴근 후 운동 또는 휴식이 제 삶이 되어버렸네요.
아직 통장잔고를 보면 텅장에 가까워서 더 열심히 해서 조금씩이라도 계속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지금은 설 연휴를 맞아 용산역의 한 카페에서 글을 작성 중입니다. 어제 늦게 잤더니 좀 무기력하네요. 근데 글은 무기력한 상태에서 더 잘 써지는 것 같아요.
위 글의 제목은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라고 적었습니다.
아마, 대충 끝을 짐작하기 때문에 이런 글을 썼겠죠. 삶은 선택과 책임이라는 귀한 교훈을 제가 얻고 이제는 알고 있는 만큼 그 사람도 본인의 선택을 내렸을 테니까요.
요즘도 괜찮지는 않습니다. 자주 생각나고 아침에 샤워할 때, 샤워하고 로션을 바를 때에도 그녀가 생각납니다. 그녀는 제가 피부가 좋지 않아 여러 피부제품을 추천해 주곤 했는데, 어쩌면 그래서 더 생각나는 것일지도요. 그녀가 추천해 준 제품은 꾸준히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식단을 조절하니 피부는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최근 음주를 3회 정도 했더니 다시 안 좋아지긴 했지만 다시 식단조절 중입니다.)
만일 다시 만난다고 해도, 결코 잘 지냈다고는 말을 못 하겠습니다. 많이 힘들었으니까요.
일기장을 보면 정말 힘들다, 끝이 없는 터널을 걷고 있다, 그만하고 싶다,라는 글이 한가득이더라고요.
사실 지금 다니고 있는 연구소도 불안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신생랩이고, 석사연구생은 아직 들어오지 않아 교수님과 저, 그리고 제 동기연구원이 과제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더라고요.
어찌 보면 열악하고 힘든 환경이지만, 이제는 전 도망가지 않기로 했어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을 보면 로켓이 그런 말을 합니다.
Pete, I'm done runnin'
현실이 찌질해서 지금의 현실의 문제를 덮어둔다면 다른 곳에 가서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이건 믿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뭐 그렇다고 해서 제 말이 전부 다 옳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저는 그랬다는 겁니다.
제가 그녀와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 또한 현실이겠죠.
이건.. 뭐랄까, 그저 시절인연이었다고 제 자신을 설득하고, 어쩌면 속이면서 살아야겠죠. 그저 그 시절에 만나서 사랑할 수밖에 없었으며, 충분히 아파하고 다시 사람을 만나보라고.
충분히 얼마나 아파할지는 모르겠어요.
지금도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잠시 막혀서 앞을 봤는데, 그녀가 좋아하던 형태의 머리핀을 한 여자가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혹시 그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이게 어떻게 금방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근데, 그렇게 아파해도 괜찮아질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토피를 달고 살았는데, 사람들은 제가 피를 뚝뚝 흘리거나 긁는 모습을 보면 괜찮냐고 아프지 않으냐고,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저는 그럴 때마다
익숙해져서 괜찮아
라고 말하곤 했어요.
아마 그저 고통을 너무 겪어서,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 테고, 저를 제가 속이는 거겠죠. 나는 괜찮다고.
저는 고민 끝에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를 해보기로 결정했고, 이 결정이 객관적으로 옳은 결정이라고는 섣불리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세상에는 여러 가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의 마음에 전부 드는 것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지난번의 재회에는 구구절절 나는 ~~를 할 거고 ~~ 너만이 없다는 글을 장황하게 써서 보냈는데, 이번에는 단조롭고 간결하게 말하고, 이 글의 링크와 제 사원증(연구원증)을 하나 보내려고요.
이 글을 보내기로 한 이유는 그 사람이 천천히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장황하게 글을 보내면 솔직히 다 읽기 싫은 게 사람 심정이니까요.
저도 연애할 때 장문을 많이 보내고는 했는데, 그녀는 그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어쩌면 읽기 싫었던 걸지도요.
혹시 그녀가 이걸 볼지도 모르니, 물론 다음 에피소드에도 남길 말이지만, 이건 말해주고 싶어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지금 널 잡았는데 이번이 안된다면 나는 내가 할 수 모든 것을 해봤다 나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으니 이제는 그만두겠다고.
어쩌면 그릇된 자신감이지만, 이제는 나는 조금 자신감도 생기고 나 자신을 좀 더 아끼면서 살아갈 수 있으니, 네가 곁에 없더라도 너의 흔적만을 보며 살지는 않을 거라고요.
너무 "아 내가 찬 거라고~ 나도 너 없이 잘 살 수 있다고~"식으로 들릴 것 같긴 하네요. 조금 수정해야겠다...
핵심은, 놓아주는 것 또한 선택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겠죠.
결코 달갑지 않고, 정말 제가 이전의 글에 말한 것처럼 심장에 독사의 앞니를 박아 넣고, 칼을 박아 넣은 것 같은 고통을 견뎌야 하고, 언제 괜찮아질지는 모르지만 그건 제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더라고요.
놓아주는 법은, 제가 생각하기에 이거 인 것 같아요.
잡고 있었기에 놓아주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고, 잡고 있는 사람은 잡히는 사람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
결국 또 선택이네요.
그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 저 또한 그 선택을 존중하며 살아나가는 게 제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제 이전의 이별을 유도한 선택의 결과라는 것.
아마도 아픈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이 사람과 함께했던 기억이 너무나 좋고, 행복했으며, 이어갈 수 있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내가 놓은 내 결정이 너무 후회스러워서 아픈 것이겠지.
그런 생각도 요즘 가끔은 하고는 한다.
결혼상대로 내가 나쁘지 않다는 자기 위로에서 비롯된 생각인 듯싶지만(필자는 경제적으로는 매력적인 상태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더라.
무슨 생각이냐면, 요새 가정 간의 불화가 많고 점점 사람들이 물질만능주의적이 되어가면서 평온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조차 힘들어졌다고 한다.
이건 너한테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말할게.
힘든 일이 닥쳐올 수도 있겠지만 항상 우리가 함께한다면 행복한 가정생활, 너에게만 충실하는 남자가 되는 것은 나에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엄청 매력 있고 하는 말마다 빵빵 터지는 그런 사람도 아니지만 조용하고 무미건조한 취미를 지녔기에 널 걱정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어.
여태까지 이 글을 읽어주신 브런치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음 글은 마지막 에피소드 'EP. -1 29살의 내가 너에게 남기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