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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드로 Feb 06. 2024

EP. 19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

했던 생각을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면 더 이상 생각을 하기가 싫어진다

오늘, 그러니까 어제 춘천에 다녀왔다. 가서 대학교 동기들과 동아리 동기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다.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사람들은 이제 그만 놓아주라는 말이 많았다.


술자리에서는 그저 리액션을 해주며 '그래, 그래, 좀 슬프네' 식으로 넘겼다.


속으로는 


"너네가 뭘 알아, 너네는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라는 마음이 있었다.


요즘은 연구실에 출근하며 여러 가지 일들을 준비하고 있다. 받은 과제는 MRI영상으로 수면패턴을 분석하는 인공지능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아직 데이터 전처리과정도 모르고, 툴 사용법도 모르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


어제 술을 먹고 밤을 새워서 그래서인지, 오전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내가 과연 옳은 길을 가고 있을까. 아무것도 아닌 길을 나 혼자 그래도 잘 갔다고 자기 위로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마음이었다.


또한 이 아무것도 아닌 성과로 그녀에게 재회를 제안하는 것이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며 내 자존감은 한차례 또 무너졌다.


다행인 건, 이제는 기어서라도 일어나는 법을 알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게 좀 편해졌다는 거.


스키나 보드를 타다 보면 넘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렸을 적 큰아버지가 용평스키장에 날 데려갔는데, 그곳에는 RED라는 상급자 코스가 있다. 분명 쉽다고 했는데, 웬걸, 막상 올라가니 너무 경사가 높아서 내려가는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넘어지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겨우 내려갈 수 있었다.


스키, 보드를 타다가 넘어지면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발에 뭐가 달려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경사진 곳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도하면 결국은 일어날 수 있다.


배트맨:비긴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Why do we fall bruce? so we can learn to pick ourselves up"



집에 오는 길에 감정을 정리하고, 학교를 한번 둘러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는데 대다수가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떠올렸던 것 같다. CC(Campus Couple)이어서 그랬을까?


나무의 뿌리처럼 수많은 가닥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지만, 그 뿌리를 타고 가다 보면 결국 나무가 나오고, 나무를 따라가다 보면 열매 혹은 꽃이 나오듯이, 나의 생각도 언제나 끝은 하나이다.


수백 번, 아니 수천번 생각해 봐도 나의 결론은... 어쩔 수 없었다는 대답만이 떠오른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나 쓰레기고, 이제 네가 질려서 떠난 거야"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좀 더 나았을까.


네가 이렇게 생각하지는 말아 줬으면. 나에게 너는 한 번도 아름답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단 1초도 아름답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다. 음... 어느 정도 냐면 네가 아이즈원의 멤버들을 보며 예쁘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네가 그렇게 예뻐 보였다고 하면 믿을까.


이건 믿을 것 같은데... 종종 코엑스나 사람 많은 곳에서 우리는 여느 커플들처럼 유치한 장난도 치고는 했는데, 길을 가다가 연예인 포스터가 보일 때면 나는 그녀를 보며 "우와 아이유보다 예쁘다"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그러면 그녀는 누구 돌 맞아서 죽는 꼴 보고 싶냐며 날 말리곤 했는데, 뭐 그것도 귀여웠다.


이제 이 글에는 내가 과거의 실수를 했고, 이제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란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미 많이 그런 말을 하기도 했고, 말을 많이 할수록 신뢰성은 떨어지기 마련, 그저 보여주면 될일.


지금 떠오르는 그녀와의 추억은... 그녀가 내 팔을 물어뜯은 일.


아, 귀엽게 물어뜯었다고 착각하는 분들이 계실까 봐 말씀드리자면, 나는 귀여웠는데 내 팔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다.


학교를 다닐 때, 그녀의 단과대와 내 자취방이 가까워서 그녀는 공강시간에 종종 내 방에 와서 놀다 가고는 했는데, 그날은 공강시간이 좀 길어서 낮잠을 잠시 있었다.


나는 우리 엄마를 닮아서 그런가, 한번 잠들면 웬만하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데, 갑자기 자다가 왼팔이 너무 아파서 일어났다.


진짜로 거짓말안치고, 그녀가 내 왼팔을 물고 있었다. 앙, 다무는 게 아니고 진짜로 물어뜯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XX야, 일어나 봐"라며 그녀를 깨웠고 그녀는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는 미안하다며 웃었다


우리는 한참을 웃었고, 나중에 들어보니 꿈에서 초콜릿이었나, 맛있는 게 나와서 그걸 먹는 꿈을 꿨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그 에피소드이다.


헤어진 지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언제쯤이면 이 상태가 끝날까.


내 마지막 재회시도가 끝나면 나는 연락을 하지 않을 것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우리의 기억 또한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테지만, 나는 그 기억이 부식되고,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는 새사람을 만나지 못할 듯싶다.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이다. 물론 내 선택으로 인해 생기는 길이겠지만, 한 길은 재회가 되어 결혼까지 가는 것이고, 나머지 한 가지의 길은 너와의 추억을 조금씩 길에 흘리며 내 앞길을 나아가는 것.


너는 후자를 택했을 것 같기는 하다.


매주 나는 성당에 나가서 기도를 올린다. 성경구절에 이런 말이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마 19:4-6)




미사를 드릴 때(미사:천주교에서 진행하는 의식)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도하는 부분이 있는데, 헤어지고 나서 항상 나는 비슷한 기도를 드렸다.


이 글의 마지막을 그 글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네가 내 곁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돌아오기를, 그렇지 않다면 네가 다른 곳에서 행복하기를"


P.S : 내 곁으로 와준다면 널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남자가 되도록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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