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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힌 Jun 20. 2021

#1 여름

너와 함께 지지배배(遲㢟蓓㟝) - 더디게 걸어갈지라도 너와 함께 꽃 피울

   피부를 찌르는 강렬한 햇빛이 느껴지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여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의 옷차림도 살갗을 많이 드러내는 짧은 옷차림으로 변해있었다. 나 같은 경우 살이 타는 것을 싫어해서 여름에 웬만큼 덥지 않고서야 항상 얇은 긴 팔 옷을 입었다. 햇볕에 까맣게 타는 것도 신경 쓰였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니 유독 털이 많고 큰 점이 있는 내 팔을 부끄러워했던 마음도 가지고 있었더랬다.

 하지만, 서른이 넘은 지금 털이 많은 내 팔도 피부가 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내 마음이 무뎌진 것일까? 아니면 심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대학교 시절 때만 해도 마음을 꽁꽁 숨기던 내가 적어도 누군가에게 내 모습을 드러냄을 덜 겁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십 대의 나는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삼십 대의 나보다 몸매도 예쁘고 해맑은 미소와 지금과는 달리 결점 없던 하얀 치아도 가지고 있었건만, 왜 나는 나를 숨기고 다녔을까. 나의 이십 대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눈치 보며 밝은 미소 뒤에 장마철에 널은 빨래마냥 퀴퀴한 속내를 감춰 두곤 했었다. 싫은 걸 싫다 하지 못하고 남들이 하는 유행을 따라 하고 내 의사를 표현하기보다 흐르는 대로 살았다. 물론 이런 나의 이십 대가 지워버리고 싶다거나 뜯어고치고 싶다거나 하진 않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마음을 가진 내가 있는 거니까. 약간의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얼마 전 홍대의 거리를 거닐었었다. 정말 다양한 스타일의 젊은 친구들을 많이 보았는데, 마치 나 이런 사람이야! 하고 말하는 듯한 차림새들이었다. 살갗을 한껏 드러낸 친구도 있었고, 머리가 화려하고 독특한 친구도, 더운 날씨에도 가죽 라이더 재킷을 멋지게 입은 친구까지 만났다. 남들과는 틀리지 않고 다른 자신을 여과 없이 노출시킨 모습들이었다. 그 모습들이 어찌나 어여쁘고 보기 좋았던지. 조금 고지식했던 어린 시절에 봤더라면 눈살을 찌푸렸을 그런 모습이었는데, 그날의 나는 그 청춘들이 바닷물이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싱그러워 보였다. 눈부신 싱그러움이 부럽기도 하고 몇 년 전 과거와는 달리 그런 싱그러움들이 사그라들지 않게 된 것이 감사하기도 했다.

 

 노출. 자극적이지만 여름이면 생각나는 그런 단어. 어쩌면 조금 늦게 삼십 대가 되어서야 내 마음에 스며들게 된 단어.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너무 당연해진 것이 너무나 다행인 단어. 이번 여름이 모두에게 당당하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여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름 햇살처럼 강하고 뜨겁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그런 여름 말이다.




글쓴 시누이 - 율힌 yulhin

그림그린 새언니 - 전포롱 jeon polong


시누이와 새언니 - 첫 만남

 새언니와의 첫 기억은-내 기억이 맞다면- 오빠의 추천으로 언니의 오일파스텔 수업을 듣기 위해 찾아간 지하의 한 강의실이었다.

 오일파스텔이라는 새롭고도 정겨운 그림재료와 이제껏 만나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람-특히나 오빠 외의 일러스트레이터-을 동시에 경험하다니, 정말 신선했다. 크레파스와 비슷한 오일파스텔을 다루자니 낯설기도 했지만 그 크리미한 색감들과 그림을 그릴 때 미끄러지는 느낌도 좋았다. 그리고 강의 중간중간에 보이는 언니의 진중한 눈빛과 부드러워 보이지만 강인한 말투도 내 맘의 불씨에 부채질했다.

 무엇보다 그림에 대해 자신이 없던 나에게 내 색감을 칭찬해준 것이 제일 강렬했는데, 그림에 다시 관심을 갖고 시작해볼까 말까 하는 고민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언니의 진심 어린 칭찬에 조금 감동했달까. 실은 조금이 아니라 많이다. 언니의 말 덕분에 자신감도 생기고 신이 나서 그림도 더 열심히 그렸더랬다.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에까지 가서 2시간씩 그림을 그릴 정도니 말 다했지.

 여튼, 새언니와 나는 첫 만남부터 보통의 상견례 자리나 식사 자리가 아니라 언니가 일하는 공간에서 만나게 되었다. 조금은 특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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