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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힌 Jun 27. 2021

#2 뾰루지

너와 함께 지지배배(遲㢟蓓㟝) - 더디게 걸어갈지라도 너와 함께 꽃 피울

 뾰루지가 났다. 한눈에 잘 보이는 쇄골에 떡 하니 나버렸다. 겨울이라면 목도리로 가려 보았을 테고 이마에 났더라면 앞머리로 가려 보았을 텐데, 이 뾰루지란 놈은 가리기 애매한 장소에 너무도 크게 나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몸에 뭐가 나면 참지 못하고 짜버리거나, 집중하거나 불안할 때 뾰루지를 잡아 뜯는 못난 손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건드리는 손버릇 탓에 나의 뾰루지는 낫기는커녕 점점 더 검붉어지고 상처 딱지가 생겼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너무나도 가리고 싶고 숨기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스스로 이 뾰루지를 더 돋보이게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살다 보면 이런 적이 참 많았다. 나에게 닥친 문제와 상황을 이겨내고 싶었는데, 정작 생각만 하고 하고픈 대로 행동을 하다 일을 그르쳤던 일들이.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꼬마 시절, 어느 날은 학원을 땡땡이치고 어차피 혼나는 거 더 놀자! 하며 밤까지 친구들과 실컷 놀았다. 집에 들어가려고 보니 나는 막상 겁이 나서 엄마에게 덜 혼날 방법을 모색했다. 아파트 앞 큰 나무 아래 작은 나무평상에서 어디서 주웠는지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버려진 변기 뚜껑을 들고 내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 말았다. 어린 나는 내가 나를 벌을 주고 들어가면 엄마에게 덜 혼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30대의 어른이가 된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나를 그토록 때렸던 이유는 머릿속의 이상대로 행동하지 않는 내가 밉고 한심하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혼이 났던 셈이다.


 나는 까마득히 기억이 나지 않을 무렵부터 내 이상, 정확히 말하면 세상이 정해준 ‘착한 아이’라는 틀을 자꾸만 벗어나는 내가 몹시도 미웠다. 나는 그 틀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들여다볼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내 마음을 구기고 짓밟고 잘라내면서 억지로 그 틀에 욱여넣었다. 그래서였을까? 내 이상과 마음의 간극이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더 벌어지면서, 끝내 그 틈에 진득한 고름이 가득 차 버렸다. 그 고름은 스물한 살이 넘어서 툭 하고 터져 버렸다. 누런 고름과 함께 터져 나온 시뻘건 피와 상처를 견딜 수 없었던 나는 가족들 몰래 그들의 품을 떠나 홀로 집을 나오게 되었다.

 

 가정이라는 안전한 알껍질을 깨고 나온 나는 많이 경험하고 다치며 세상을 배웠다. 하지만 나에 대해 느끼고 들여다보고 경험하며 배울 순 없었다. 내 눈은 나를 보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보았고, 내 입은 내 감정과 의견을 말하기보다 상대방의 얘기에 맞장구쳐주기 바빴으며, 내 귀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의 따스한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들의 호의를 의심하기만 했다. 바로 내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맙게도 나의 가족들은 돌아온 나에게 힘들었던 그때의 내 시간들을 ‘군대를 다녀왔다.’고 표현해준다. 내 마음을 배려해서 그렇게 말해 준다는 걸 알기에  이에 대해 얘기할 때 겉으로는 웃으며 동조했었다. 아마 내 가족들은 내가 속으로 웃지 못했다는 것을 잘 몰랐을 것이다. 인간의 시련을 정말 군대라고 표현한다면, 내 마음은 아직 제대하지 못했기에, 웃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 마음이라는 친구 빼고 나머지 친구들은 제대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에게 싹싹한 젊은이로 보이는 친구,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를 조금 다룰 줄 아는 친구라던가 일머리가 빠르고 대본 파악도 빠른 친구들이 말이다.


 황량한 마음이라는 군대를 제대했다고 말하시는 부모님께 나는 좀 많이 부끄럽다. 그 힘들었던 20대의 시간이 아니라, 내 마음은 내가 그들을 다시 발견할 때까지 끊임없이 다가와주고 옆 자리를 지켜준 나의 가족, 친구들과 순수한 눈빛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 친구가 있기에 더디더라도 이만큼이나 걸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고독했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었던 그 세월 동안 스스로를 놓지 않고 견뎌준 ‘나’라는 사람이 있어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담담히 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보통 뾰루지와 같은 피부질환은 피부과를 꾸준히 오래 다녀야 낫는다고 말한다. 도중에 치료를 멈추면 재발할 가능성이 높고, 탄창을 갈 듯 피부를 갑자기 새 것으로 바꾸어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너의 마음, 그리고 나의 마음의 뾰루지 또한 그렇다. 갖고 싶던 가방과 옷을 산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거나 가족, 친구들과 정을 나눈다거나 하는 의존적인 행복감으로는 마음을 온전히 치료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나의 과거이자 일부인 이 뾰루지를 미워하기보다 보듬어줄 수 있다. 뾰루지를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덧이 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가여운 뾰루지를 사랑할 것이다. 언젠가는 뾰루지가 가라앉아 자유롭게 나를 드러내고 미소 짓는 나를 기다리면서.





글쓴 시누이 - 율힌 yulhin

그림그린 새언니 - 전포롱 jeon polong


시누이와 새언니 - 단거

시누이는 단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새언니는 단걸 좋아한다.

지금 시누이는 새언니와 함께 단걸 먹는 것을 즐겨하고,

새언니는 단걸 나누어 주는 것을 기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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