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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힌 Jul 18. 2021

#5 매미

너와 함께 지지배배(遲㢟蓓㟝) - 더디게 걸어갈지라도 너와 함께 꽃 피울

 매미소리가 따갑다. 점점 더 산란하게 머릿속으로 울려 퍼진다. 유독 소리가 더 큰 것 같아 거실로 나가보니, 매미가 베란다 방충망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아파트 7층이었는데, 매미는 그 높이를 올라와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나무에 자리가 없었던 걸까 아니면 바람에 실려 왔을까. 길을 잃고 맞지 않는 자리에 붙어있는 저 매미의 기분은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한동안 매미를 쳐다보다 결국 아무렇게나 잡힌 빗자루 끝으로  하고 쳐서 날려 보냈다.


 어렸을 때, 수건 돌리기를 해본 적이 있다. 소풍을 가면 꼭 해야 하는 필수 코스였다. 아이들이 모두 원 모양으로 빙 둘러앉아 있으면 술래가 수건을 쥐고 그 원을 따라 돌았다. 술래는 빙글빙글 뛰다가 친하고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수건을 놓곤 했다. 친한 친구들이 많지 않던 내겐 너무도 가혹한 놀이었다. 다들 수건을 놓고 달리고 일어서서 달리고 계속해서 자리가 바뀌는 데 나만 혼자 멀뚱히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게 속상했다. 양 옆으로 서로 친한 아이 둘이라도 앉게 되면 그 사이에 낑겨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색한 침묵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앉아 있는 그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어느 날은 늦잠을 잔 일요일이었다. 방안 텔레비전 앞에 이불이 깔려 있었고 거기에서 홀로 잠이 깼는데, 거실에서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빠와 엄마, 오빠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화목해 보여서 말썽쟁이인 나만 없다면 우리 가족은 싸우지 않고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 포근한 이부자리가 갑자기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몇 년 전, 한참 드라마를 찍고 있을 때였다. 보통 나에게 휴일이란 거의 없었다. 촬영 없는 날에도 출근하고 촬영이 있을 땐 새벽에 나갔다 새벽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일에 치여 몸은 힘들었지만 예쁜 장면을 만들어냈다거나 배우나 스탭들이 고맙다고 말해주고, 쫑파티 때 주연배우가 책을 선물해줬던 기억 등등 나름대로 뿌듯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 일을 함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반짝이는 마음은 이내 곧 부스러져 버렸다. 중도에 합류했던 드라마에서 전임자의 실수와 여자라는 이유로 한 남자 FD로부터 거친 언사를 듣고 무시당하거나, 연출 감독으로부터 나이가 훨씬 많은 조명감독을 만나보라는 농담을 듣거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야”나 “너”로 불리고 내 노력이 무시되고 대접받지 못했을 때 난 여기에 왜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도 겉으론 웃으면서 상황을 넘겼지만 마음속엔 뭔가 단단하고 작은 응어리가 맺혔다. 그 상태로 계속 일을 하면서 응어리는 점점 내 마음속을 달그락 거리게 하는 돌 떵이가 되어 갔다. 내가 나를 위해 안정과 휴식의 시간을 가졌더라면, 좀 달랐을까. 맘속의 돌 떵이가 시끄럽게 달그락 댈수록 나는 그걸 잊기 위해 거진 매일을 잠도 채자지 못하면서 술을 마셨다. 그 상태로 일도 하고 휴일 없이 제대로 쉬지 못하니 마음도 몸도 상할 만큼 상해서 나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점점 자존감이 떨어지고 의욕도 없어졌으며, 그저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있던 그 자리가 점점 버거워졌고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땐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자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내 자리가 없다는 것이 몹시도 슬펐다. 어떤 일을 하는 게 내 자리일까.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자리일까. 아무리 과거를, 생각을 곱씹어 봐도 점점 더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어떠한 노력도 생각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누군가 나를 툭 하고 쳤다. 그들은 기다란 물건으로 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아무것도 안 하면 어때. 지금까지 이만큼 해온 걸로도 충분해. 남들보다 잘나고 특별해질 필요 없어. 우리 눈엔 네가 전보다 더 멋지게 자란 게 보여. 인생은 서른부터 재밌더라. 맘껏 날아다녀봐, 우리는 나무가 되어 너를 항상 기다릴 거야.





 분명히 뻔히 알고 있던 작은 말들이 콕콕 맘속 돌 떵이를 찔러대었다. 전과는 달리 나에게 향해 오는 작은 말들을 막기보다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돌 떵이는 물러지고 바스러져 달그락 거리던 소리가 잦아들었다. 내 마음이 푸릇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오늘도 나라는 매미는 엉뚱한 곳을 기웃거린다. 전봇대일지도 모르고 가로등일지도 모른다. 현재 내가 있는 자리가 어디이든 그런 것은 이제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나에겐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가족이라는 ‘나무’가 있다. 내가 찾아내야만 하는 자리가 아닌 나를 기다려주는 자리가 있다. 그렇기에 나는 힘껏 날아다니며 마음껏 소리 내어 울어볼 것이다.








글 쓴 시누이 - 율힌 yulhin

그림 그린 새언니 - 전포롱 jeon polong



시누이와 새언니

새언니는 카페인에 약하다.

밀크티만 마셔도 눈이 반짝반짝하고 빛난다.

시누이는 학원에서 커피를 배웠다.

가족들을 위해 핸드드립을 내릴 때면 항상 새언니가 맘에 걸린다.

혹시라도 소외감을 느낄까 노심초사한다.

우리 가족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행여나 신경 쓰일까 봐서다.

함께 가족이 된 지 조금 늦고 커피를 마실 수 없다는 게 서로 조금 다르지만

시누이는 새언니가 좋다.

조만간 새언니와 손잡고 쿨 라임 피지오를 마시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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