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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힌 Jul 11. 2021

#4 복숭아

너와 함께 지지배배(遲㢟蓓㟝) - 더디게 걸어갈지라도 너와 함께 꽃 피울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문다. 까끌한 느낌이 좋아 껍질째 통째로 와작 베어 문다. 입술에서도 손가락 사이사이에서도 반짝이는 과즙이 새어 나온다. 입 안에서 사르르 씹히는 과육은 시원하고 달큼하다. 다 먹고 나니 두 손에는 찝찝한 끈적임만 남았다.


 태초에 에덴동산에 선악과가 있었다. 그리고 이브와 아담도 살고 있었다. 그들은 그 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을 먹을 수 있었는데, 단 하나 선악과만은 먹지 못했다. 나는 궁금했다. 선악과를 베어 물었을 때 그 맛이 어떠했는지, 과즙 양은 많은지 그리고 사과 모양일지 아닐지를. 성경에서는 선악과에 대한 어떠한 묘사가 없다. 다만, 선악과를 먹고 난 후 이브와 아담은 부끄러워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렸다는 얘기가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신기하게도 선악과를 먹고 즉, 선과 악을 알게 되고 나서 이브와 아담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만약에 두 사람이  둘 중 하나만 알게 되었더라면 안 부끄럽지 않았을까?






 나는 줄곧 ‘성악설’을 믿어왔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이문열 세계명작 산책-병든 조개의 진주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등이 실린 단편집이다.) 같은 인간에 대해 다루는 소설책을 좋아하고 자주 읽어서 그런지 더더욱 순자의 학설이 옳다고 여겼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내가 어려서 잘 몰랐기에 실수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원래 악한 아이여서 잘못을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본능적으로 하고 싶어서 한 일들이 모두 나쁜 행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 몰래 학원을 땡땡이치면서도 이러면 안 돼 이건 못된 짓이야 하고 나를 말리기보다 자유로움을 즐겼고, 공부한다고 말해놓고 방에서 몰래 게임을 할 때도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정도를 벗어나는 것은 내게 너무도 달콤했다. 흡사 복숭아처럼. 하지만 실컷 놀고 현실로 돌아오면, 내 마음은 죄책감이란 과즙으로 끈적끈적하고 찝찝하게 범벅되어 있었다. 차곡차곡 쌓아온 크고 작은 잘못들이 결국엔 찰싹 달라붙고 달라붙어 떼어낼 수 없는 두꺼운 딱지가 되었다. 나에게 스스로 ‘너는 나쁜 사람’이라는 낙인을 새겨버리게 된 것이다.


 마음에 낙인이 새겨졌던 탓일까? 나는 사람을 잘 믿지 못하게 되었다. 아니 실은 남을 믿지 못한다기보다 나를 믿지 못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다른 이가 나를 좋아해도 왜 나를 좋아하지? 생각하기도 하고, 진짜 나를 알게 되면 이 사람은 나를 싫어할 거라고 섣불리 판단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렇다 보니 다른 사람이 다가오려고 하면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에 도망치는 우리 집 고양이만큼 겁을 먹었다. 얼굴을 웃지만 마음은 웃지 못했다. 스스로가 친 벽 안에 갇혀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있음에도 혼자 공허하게 군중 속 고독을 씹었다. 사람들과 만나면 숨기고 꾸며내기에 몹시 바빴다. 먹고 싶은 메뉴,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친구들이 얘기하지 않으면 “난 아무거나 괜찮아.” 하며 말도 꺼내지 않았고 괜히 있는 척하고 착한 척을 하려고 “내가 쏠게!” 하며 으스대기도 했다. 마음을 꾹꾹 누르다 보니 구기고 구겨져 펼쳐볼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떤 마음 상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정말 선한 마음에 착한 일을 한 것인지 착한 척을 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누군가에게 착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들어도 겉치레 인사겠지 하고 지레짐작했다. 그 당시엔 나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모든 칭찬이 껍데기 같았고, 날 좋아하지 않을 것이란 의심에 그들을 좋아하고 싶으면서도 좋아하고 싶지 않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한 시기에 적절히 멀어지고 하는 것이 더 나았다. 상처 받는 게 두려웠다. 그리고 깊은 관계가 버거웠다. 스스로 서기도 버거운데 관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관계에게서 도망치기도 많이 도망쳤고 잠수도 많이 탔었다. 다른 사람이 받을 상처는 생각 못하고 내 상처만 오롯이 끌어안았다. 나의 20대는 자궁 속의 태아보다 더 작게 움츠러들었던 시기였다.


 서른 살이 되어 한 순간에 짠하고 바뀐 것은 아니다. 서서히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면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고 내 안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바뀌었고 바뀌고 있다. 아직 나라는 사람의 인성과 인생의 종착지가 어딘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방향이 옳은 방향이라고 믿기에 더디 걸을지라도, 잠시 멈출지라도 다른 쪽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도 너와 같이 나답게 꽃 피워가는 중이기에 너에게 해결책은 이거야! 우린 꼭 이래야 해! 하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너 혼자 암흑 같은 진흙 속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너의 옆자리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어쩌면 선악과가 사과나 무화과가 아닌 복숭아와 같은 형태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뜨거운 여름날 남몰래 먹던 복숭아를 달콤하게 베어 물던 그때, 손가락 사이로 흐르던 그 복숭아 과즙의 끈적함이, 죄책감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었기에, 이브와 아담도  손에 남은 과즙이 부끄러웠던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인간의 시초였던 이브와 아담도 그렇듯, 우리 모두 두 손에 죄책감을 끈적끈적하게 묻히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선과 악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남들이 말하는 악을 행하고 선을 알기에 죄책감을 가진다. 하지만 그 죄책감 때문에 나를 옭아매고 미워해서는 안 된다. 이브와 아담처럼 부끄러워져 나를 가리고 감추기보다 차라리 무화과 잎으로 손을 닦고, 그 손으로 다 먹은 복숭아 씨앗을 심자.





글 쓴 시누이 - 율힌 yulhin

그림 그린 새언니 - 전포롱 jeon polong



시누이와 새언니 – 자전거

시누이는 MTB 자전거를 탄다.

새언니는 귀여운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탄다.

시누이는 자전거를 탈 때면 전문가처럼 헬멧, 선글라스, 라이딩복으로 완전 무장을 한다.

새언니는 영화 작은 아씨들에 나올 법한 귀여운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탄다.

너무도 다른 시누이와 새언니지만, 시누이와 새언니는 서로의 자전거 타는 모습이 귀엽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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