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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힌 Aug 01. 2021

#7 옥수수

너와 함께 지지배배(遲㢟蓓㟝) - 더디게 걸어갈지라도 너와 함께 꽃 피울

 나의 여름은 노란빛이었다. 보통 여름 하면 초록빛이나 푸른빛을 떠올리지만, 어린 시절 내 여름은 노랬다. 언제나 옥수수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알알이 노란 옥수수를 하나씩 떼어먹기도 하고 한 입 크게 물어뜯어 먹기도 했다. 다 먹고 난 옥수수심을 쪽쪽 빨아먹으면 어찌나 달고 짭짤했는지. 상상만 해도 혀끝에 그 맛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여름을 떠올리면 그 노란 맛이 그려진다.

 

 왜 옥수수를 좋아했을까, 눈을 감고 옛 기억을 돌이켜 봤다. 생각이 잘 나지 않아 눈앞의 어둠을 가르며 파헤쳤다. 멀리서 작은 빛이 보였다. 어렴풋이 그 빛 속에서 밝게 웃으며 옥수수자루를 메고 있는 외삼촌이 보였다.






 어릴 적, 나는 큰 외삼촌을 옥수수 삼촌이라고 불렀다. 여름이면 꽤나 큼직한 옥수수자루를 가지고 오셨기 때문이다. 그게 사 온 것인지 따온 것인지는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무척 맛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엄마가 한 소쿠리 삶아주면 앉은자리에서 홀랑 다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내 몸이 옥수수자루가 된 듯 알알이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가선 옥수수 하면 삼촌이 떠오르고 삼촌 하면 옥수수가 생각이 나는 지경이었다. 나에게 삼촌은 먹을 것을 너무 좋아하는 꼬마에게 맛난 간식을 가져와 주는 멋진 옥수수 삼촌이었다.


 옥수수 삼촌의 미소는 찬란했다. 치아는 매끈하니 갓 딴 옥수수 씨알 같았다. 브래드 피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너무 멋졌다. 하지만 추억이 바래져서일까 그의 미소가 세상 풍파에 의해 닳아서일까. 옥수수 삼촌의 미소는 내가 클수록 옅어졌고, 나이를 먹을수록 희어졌다. 한참이나 소식이 끊겼다 오랜만에 만난 옥수수 삼촌의 미소는 슬픈 맛이 났다. 이제는 달짝지근하지 않은 그 맛이 애석했다.


 위로하고 싶었다. 무언가 말을 건네어보고 싶은데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힘내시라는 말은 그저 빈껍데기 같은 위로가 되고, 아무것도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는 현실은 내 가슴을 더욱 먹먹하게 할 것 같았다. 옆에서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밝게 웃어 드리고 더 즐겁게 장난치며 이야기해드리는 게 최선이었다. 삼촌에게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어디에 있든 언제나 함께 웃기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옥수수 삼촌은 이십여 년 전에도 지금도 나의 멋진 영웅이라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물쭈물하던 겁쟁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삼촌을 떠나보내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하지 못했던 얘기가 마음에  하고 걸렸다. 나 역시 힘든 시기를 겪어오면서, 삼촌에게 해주고 싶던 말들이 가장 따듯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본인에게 위안이 되어줄 말을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자신을 남만큼 애틋하고 소중하게 보지 않으며 외면하고, 남에게 받는 위로로만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 생각하는 껍질들이 그 말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물론, 가족과 친구들의 위로는 설탕같이 달콤하고 소금같이 짭짤하다. 그러나 설탕과 소금이 온몸에 스며들도록 따스히 안아 녹여내는 것은 자신이다.



 포근히 안아 녹여내 보자.



우리는 누구보다 달달하고 짭조름하고 맛있는 옥수수가 될 것이다.

어렸던 여름날, 추억의 그 맛처럼.








글 쓴 시누이 - 율힌 yulhin

그림 그린 새언니 - 전포롱 jeon polong




시누이와 새언니

시누이는 명란젓을 샀다.

명란젓을 잘 먹긴 하지만 사 먹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시누이는 명란젓을 샀다.

고깃집에서 곁들여 나온 명란젓을 맛있게 먹던 새언니가 생각 나서다.

새언니는 옷을 샀다.

영어도 공부하고 그림도 그리고 너무도 바빠 시간이 없다.

그래도 새언니는 시간을 짜내 옷을 샀다.

꼬까옷을 입고 신나서 뛰어다닐 시누이가 생각 나서다.

새언니의 냉장고는, 시누이의 옷장은,

두 사람의 마음은 너무도 풍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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