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 내 우편에서

사랑이 들려지던 시간

by 에스더


계약 만기로 이사를 하고
가장 가까운 교회로 등록을 했다.


주변에 산이 있어 공기도 좋았고,
교회의 분위기도 참 따뜻했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예상 밖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


다 가구 주택이었고,
집이 허름해서였는지
밤이 되면 천장과 부엌에서
쥐들의 기척이 심하게 들려왔다.


소음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위생에 대한 염려가
하루하루 마음을 잠식해 갔다.


점차 쥐들과의 신경전 속에서

편안한 밤을 보내기란
점점 어려워졌다.


결국 다시 이사를 선택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매일 쌓여 가는 걱정과
정신적 피로 속에 머무는 것보다는
차라리 또 한 번 짐을 꾸리는 편이 나았다.


다시 이전 동네로 이사했다.
그러나 이미 등록한 교회와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목사님과 사모님의 진심 어린 관심,
차량 운행까지 배려해 주신 덕분에
거리가 꽤 있었지만
나는 계속 그곳에서
내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 교회로 옮긴 뒤
어느 순간부터 온 철야 기도는 멈추게 되었다.


금요 철야 예배를 마치면
사모님은 거리가 먼 성도들을 하나둘 집까지 운행 해주었다.
우리 집은 늘 마지막 코스였다.


큰 도로에서
비교적 넓은 골목으로 접어들어
삼백 미터 남짓한 비탈길을 올라야 우리 집이 있다.
집 앞까지 태워주신다고 하지만, 골목에서 봉고를 돌리기엔 불편할 수 있기에
나는 늘 골목 입구에서 내리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사모님의 권유를 사양하고
골목입구에서 내려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절반쯤 올랐을 무렵,
뒤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인적이 끊긴 늦은 밤이라는 조건은
소리를 필요 이상으로 또렷하게 만들었다.


순간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밀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젊은 남자로 보이는 사람이 안정적인
거리를 두고 올라오고 있었다.


장 보조기를 찬 보행은 오르막에서 더 불편하다.
나는 거의 달아나듯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마음만 조급할 뿐

다리는 뜻과 같이 움직여 줄 리가 없었다.


그러다

숨이 차오르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


“주님…!”


그 한마디 속에는
긴장과 두려움,
연약함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 상황을 말로 풀어낼 여유는 없었지만
도움을 구하는 다급함이었음은 분명했다.


그때였다.


내 오른쪽 귀 가까이에서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염려하지 말라.”


너무도 또렷한 육성이었다.
인자하며 깊은 평안을 담은 음성이었다.


순간적으로,

뒤에 올라오던 그 사람이 내 곁으로 다가온 줄 알았다.


어느 사이 곁으로 와서

그리고 마치 내 마음을 아는 것처럼
말할 수 있는지.


긴장하고 있었던 터라

더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소리가 난 옆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적잖게 놀랐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 봤다.
그 남자는 여전히 일정한 거리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예수님, 예수님이세요…?!”


낭랑한 젊은 남자의 음성.
인자한 사랑이 농축된 듯한,
돌이켜 보니 분명하게도 기억에 남아 있던 음색이었다.
언니의 문제로(앞서 기록)기도 하던 날,

들려 주셨던 그 음성과 같았다.


그날은

사방에서 울려 퍼지듯 들렸다면,
그 밤에는 바로 옆에서,
정확히 '내 우편' 에서
가만히 들려주셨다.




“염려하지 말라.”


그 말씀은
지키심이었고,
평온으로의 초대였다.


이 음성은 상황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붙드시는 말씀이었다.


즉,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조용한 선언이었다.


나는 문제의 한가운데에서
긴장하고 있었지만,

주님은 나를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리’로
옮기고 계셨다.


이 사랑은
조건부 관심이 아니라,
내가 요청하기도 전에
이미 알고 계셨던
선제적 인식의 사랑이었다.


그 사실이
그 밤의 두려움을
온전히 밀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그 사랑이신 분께서
그 밤도
‘내 우편’에서 당신의 마음을 전해 주셨다.


주석의 신학적 해석에서 ‘우편’은
감정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보호와 책임이 놓이는 자리라고 기록한다.


그 밤의 평안은
내가 주님을 붙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주님께서
나의 자리를 맡고 계셨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주님은
내가 도움을 요청하기 이전에,
처해진 두려움을 언어로 정리하기 이전에
이미 내 옆에 계셨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시 121:5)


그 밤도,


새록새록 피어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불변하시는 약속 안에서


내 마음은
한껏 환희로운 은혜에
조용히 잠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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