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지독한 집착..

by 에스더

사랑과 생존의 경계에서 (1)



사랑이지만, 동시에 사랑이 아니었다.
그를 좇아 나선 광야의 길 위에서, 나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라는 낯선 과제를 마주했다.

주어진 하루하루, 익숙지 않고 적응하기 힘든 시간 앞에 앉아서
끊어낼 수 없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견디고 참아야 했다.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그 책임의 무게는 감당해야 할 숙명처럼 내게 주어졌다.


나전칠기 농 공장을 열던 그날, 나는 그것이 새로운 시작이라 믿었다.
하지만 시절은 냉정했다.
때마침 업계의 경기 침체의 바람은, 작고 연약한 공장들의 문을 하나둘 닫게 했고,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소자본의 끝자락에서 버티던 손끝이 서서히 풀려갈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노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인생의 변수,
그 이름은 ‘타이밍’이라는 것을.


일년도 채 되지 않아, 공장의 불빛은 꺼졌다.
그리고 우리 세 식구는 몇 벌의 옷가지만 챙긴 채, 전남의 시댁으로 내려가야 했다.


삶은 그렇게, 멈춤을 통해 다음 장으로 넘겨지는 책과도 같았다.

우리의 의지로 이어붙인 페이지는 어느 순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 멈춤의 여백 위에서 조용히 새로운 문장을 써 내려가고 계셨다.




낯선 시골 생활이 시작되었다.
불편한 환경, 부족한 식생활,

그리고
그의 술기운이 하루하루 우리 삶을 잠식해 갔다.


밤마다 터져 나오는 그의 불만은 술기운을 빌려 거침이 없었다.
그의 말 속에는 늘 친정 부모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고,
그 감정의 끝은 언제나 나를 향해 있었다.

익숙치 않고 적응되지 않는,

당혹함과 긴장속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며 나는 그앞에서 죄인이 되어갔다.


그는 맞닥뜨린 어려움이 나로 인해 해결되길 바랐지만,
나는 그 기대를 채워줄 수 있는 처지가 될 수 없었다.
친모가 아닌, 나름의 주어진 환경으로 인한 난처함을 그는 조금도 이해 하지 못했다.


날이 지날 수록 같은 공간에 있어도,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에 서 있는 사람처럼 점점 낯설어갔다.
밤마다

닿지 않는 마음의 틈을, 나는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장애 딸을 떠맡겼으면, 당연히 그에 대한 보상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짐짝을 맡겨놓고 나 몰라라 하는게 부모냐.”


극에 달한 그의 여과 없는 말들은,뾰족한 송곳이 되어 인정사정없이 가슴을 찔렀다.

사랑이라 믿었던 마음은, 충격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수없이 반문했다.

어떻게 그리 말할 수 있는지를..,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존재의 가치가 흔들렸고,

전혀 예상치 못한 쓰린 상처와 무력감이 밤마다 켜켜이 쌓여갔다.


냉정한 말 한마디, 무심한 시선 하나에도
내 자존감은 서서히 버틸 힘을 잃어갔다.
정리되지 않는 상실감이 내 안을 흩뜨려 놓았고,
점차 그의 눈을 마주할 용기도, 믿음도 잃어갔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사랑했다.
위로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도,
식지 않는 순애(殉愛)로 그를 품었다.


정신적·정서적 회복력을 시험받는 시간 속에서도
이 모든 상황이 필연이라 고집하며 믿으려 애썼다.
그 고집이야말로 내가 견뎌 낼 수 있는 현실적인 유일한 방편이었다.


한편

그 시간들은,

내 믿음의 온도를 재조정하고 지치고 상심된 마음을, 주 앞에 다시 세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마음과 마음이 닿지 않는 냉한 시간들 속에서,
그는 달라지지 않는 현실앞에 새로운 변수를 놓았다.
‘시골엔 일할 곳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결국 서울로 떠나버렸다.


그늘 하나 없는 사막같은 현실,

엄마로서의 생존이 시작되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세상을 모르던 나는
그 작은 부엌에서 빈곤한 생존의 언어를 배워갔다.

하루 세 끼를 잇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한 끼의 식사조차 누군가를 향한 사랑과 책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그리고 몸으로 체감하며 엄마라는 삶을 익혀가야했다.


식탁 위는 늘 적막했다.
혼합곡 한 줌으로 지은 밥, 건더기 하나 없는 된장국,
그리고 고추장이 매 끼니를 이어주는 유일한 반찬이었다.
다행히 시어머니께서 건네주신 장독이
그나마 작은 위로와 버틸 힘이 되어주었다.


적극적 생존 전략을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부업으로 소득을 확보하고, 끼니를 이어가며,
그의 부재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지키려 애쓰는 모든 노력은
결국 '역경 속 회복 탄력성'을 실천하는 과정이 되었다.


두 달이 지나서야
‘월급이 안 나와서…'

그의 짧은 문장의 편지가 도착했다.

사랑이라는 그리움속의 애틋함은 그 한통의 편지를 받음으로 모든 시름을 잊게했다.

우리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고 일에만 몰두하라고 답을 보냈다.

하지만 부업조차 꾸준하지 못했기에,
매일의 식탁은 단순히 생명을 이어가는 방편일 수밖에 없었다.


그상황에서, 둘째 아이가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배가 불러오자, 주변의 시선이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세대 가구로, 우리 부엌문 앞이 우물가였기에
매일 모이는 장소였고, 물 한 바가지 쓰는 일조차 소문으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한집 아줌마들은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하는 듯해 보였다.
배부른 내 모습을 안타까운 눈으로 걱정스레 바라보고,
그에 관한 소식을 넌지시 묻기도 했다.
때로는, 두 모녀만 남겨두고 그가 달아나지 않았나 하는 눈빛까지 읽혔다.

작은 몸짓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시골 공동체의 촘촘한 시선 속에서 나는 숨죽이며 하루를 살아내야 했다.


이 모든 일이 나의 선택속에 결정된 길이라 할지라도,

그 분의 뜻 안에 내가 있음을 믿을 때, 어떤 환경도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 한 달이 지나서야, 그는 무관심한 얼굴로 찾아왔다.
볼록한 내 배를 보고, 그는 서슴없이 말했다


"또 딸을 낳으면, 셋이서 집단 자살해라!"


그 말에는 냉소만이 아닌, 묘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미 성별은 정해졌을지도 몰랐지만, 나는 아들을 얻기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단순히 아들을 원해서가 아니었다.
그와 이어질 가족 구조를 지키고,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내면 깊은 간곡한 소망이었다.


태몽을 들은 그는, 아들이라는 확신을 가진 듯했다.
볼록한 배를 어루만지며, 마치 뱃속 아이에게 지시하듯 천천히 말했다.


"눈은 엄마를 닮되, 쌍꺼풀이 없어도 커야 하고,

코는 아빠를 닮되, 너무 날카로우면 자존심이 세니, 오똑하되 날카롭지 않게,
입술은 남자가 너무 얇으면 보기 싫으니 적당히 도톰하게,
얼굴형은 아빠를 닮아야 하고…"


그의 말을 들으며 그를 닮은 제2의 그를 맞이할 순간을 기대했다.
아이를 통해 이어질 가족과, 깊어질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내면적 설렘이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마음을 채웠다.


그가 건네준 십만원이라는 돈은, 그가 머무는 동안의 비용으로 일부 소진되었다.
그리고 그는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서울로 떠났다.


표현치 못한 짙은 아쉬움은 무심한 그의 뒷모습에 매달리듯 따라갔고,
다시 남겨진채 허전하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오래도록 그 자리를 서성이며 서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고, 낯선 타지에 외롭게 남겨져야 하는 이유 앞에서,

그리고 감당하기 힘든 환경앞에서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벗어날 수 없음에 내가 감당해야 할 몫임을 묵묵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아쉬움'은 차라리 '기대'의 다른 이름으로 승화시키며,
오직 버텨내야 하는 낯선 생활 환경 속에서
세상 물정 모르던 나는 강하게, 그러나 조용히 세워져야 했다.




산달이 되자,
그는 서울 친정집으로 가 있으라는 편지를 보냈다.
내게 그의 말은, 곧 거역할 수 도 부정할 수 없는 명령과도 같았다.


걷는 활동이 많지 않은 탓에
유난히 부른 배를 안고 두 모녀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장 보조기를 착용해야 했기에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그 길로 친정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쌓였던 불안과 긴장은 서서히 누그러졌고,
마음 한켠에는 한결 안정적이고 따스한 온기가 자리 잡았다.


뱃속의 아기는 아빠의 말을 다 들었나 보다.
갓 태어난 얼굴임에도 밤톨처럼 작고,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쉽사리 울지도 않고, 듬직한 모습이었다.
그가, 그리고 내가 그토록 바라고 기도했던 아들이었다.


날이 갈수록, 아이는 놀랍게도 아빠의 바람대로의 얼굴을 갖춰갔다.
그 모습은 내게 커다란 위로이자 기쁨이었다.
그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고, 좀더 안정적인 삶이 유지되리라 믿었기에,
그동안의 모든 어려움이 한순간 다 잊혀졌다.




아기를 향한 그의 고백은 아기만 들은 것이 아니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도 함께 들으셨음을,
균형잡혀 가는 아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에 응답하셨도다.

하나님은 나를 멀리하지 아니하시고 나의 기도를 떠나지 아니하셨도다." (시 66:19-20)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좇아 나선 탕자의 자리에서도
아버지의 시선은 늘 곁에 머물러 있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그 불변의 사랑과 은총 속에서

내가 존재됨을 믿기에 역경의 시간 속 구비 구비 나는 오직 안위하며 버틸 수 있었다.


아들의 백일을 지낸 뒤,
우리 가족은 다시 시골행 버스에 올랐다.

오직 그와 함께하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이라 스스로 설득했고,

그 지독한 집착을 끝내 사랑이라 믿었다.


돌아가는 길 위에서, 삶의 또 다른 페이지가 조용히 넘어가고 있었다.


그 뒷 페이지에는 시베리아같은 혹독한 시린 바람이 일고 있었음을 나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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