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필수...
이 즈음에서,
내 삶을 깊이 흔들어 놓은 한 남자를 소개하려 한다.
그와의 만남은 내 영혼을 시련 속에 세웠고,
그 과정에서 나는 점차 '제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아 갔고,
'자기 부인'앞에 철저히 순복해야 하는 자로 단련되어져야 했다.
은행잎이
유난히도 고운 황금빛으로 물들던 23세의 가을,
그는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투박한 글씨였지만, 그 안에는 절제되지 못한 고독과 갈망이 짙게 배어 있었다.
마치 오래된 원두의 향처럼, 그의 문장은 은근히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단둘이서만 만나길 원했고, 그 바람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해가 바뀌자, 그는 더 집요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정 만나주지 않으면 직접 부모님을 찾아뵙겠다.”
협박과 간청이 뒤섞인 편지를 읽으며 문득 그에 대한 궁굼증이 생겼다.
설득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한 번쯤은 만나보려 했지만,
막상 마주한 그는, 또 그의 언어는 오히려 나를 포섭해 갔다.
그의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흔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언어가 단순한 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고 주도하는 능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체감했다.
그는 뚜렷한 이목구비의 잘생긴 얼굴로,
긴 시간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진심을 관철시켰다.
나는 그의 주도에 꼼짝 못하고 경청하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첫눈에 호감을 느낀 사람’ 앞에 앉아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열애'곡을 신청했다.
그의 눈빛과 음악의 울림은 낯설면서도,의외로 싫지않게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은, 나에게 있어서는 설레임과 가슴뛰는 감정 속에서 치러졌다.
어느 날, 삼청공원을 돌아 내려오는 길에서 그는 잡은 손을 꼭 쥐며 조용히 다짐하듯 말했다.
“여자에게 남자는 첫사랑이어야 하고, 남자에게 여자는 마지막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 짧은 한마디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작은 돌멩이처럼 떨어졌다.
파문이 일었고, 닫혀 있던 감정의 수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그 문장 속 주인공이 된 듯 느껴졌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
밤이면 그리움에 잠기고, 아침이면 햇살처럼 다가오는 사람.
그는 내 존재의 의미가 되어갔다.
그러나 문제는,
나는 이미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응답을 잊고 있었다는 점이다.
스물두 살 어느 늦은 밤,
창가에 앉아 별빛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했다.
“만약 제게 결혼할 사람이 있다면 내일 만나게 해 주세요.
누군가와 결혼 이야기가 오간다면, 그를 하나님이 예비하신 동반자로 알겠습니다.”
즉흥적이고도 무모한 기도였지만, 그 안에는 간절한 갈망이 스며 있었다.
나는 믿었다.
정녕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내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도 놀라운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그리고 하나님은 실제로 응답하셨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의 친구분이 친목회 문제로 집을 방문했다.
아줌마는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얘가 참 예뻐졌네. 이제 시집가야지. 우리 동생하고 결혼해라.”
나는 애써 못 들은 척했지만, 순간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청소년기에 가끔 보았던 아줌마의 동생.
그는 언청이 입술을 가진, 그늘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릴적부터 외로움 속에 자라온 나는 언제나 따뜻한 대화와 교제를 사모했다.
사랑의 속삭임은 내 마음속 꿈이자 갈망이었다.
“…그 입술로 어떻게…”
그것은 어쩌면 나를 잘 몰랐던, 단순하고 이기적인 선입견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의 속삭임만큼은,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와 나누고 싶었다.
아줌마의 진지한 표정을 스치듯 바라보는 순간,나는 직감했다.
하나님의 응답은 때론 우리가 기대하지 않는 방식으로도 다가온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그 뜻을 거부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랑의 낭만’이었고,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의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땐 그랬다.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받고 싶었다.
그 날 후로도 수 차례 아줌마의 끈질긴 설득이 이어졌지만,
나는 끝내 그 사람은 아니라고 애써 부인했다.
그리고, 그 기도조차 까맣게 잊고 지냈다.
편지를 보낸 그때의 그는, 사실 샘터회에 가입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그는 장애가 있더라도 부유한 여자를 만나
큰 노력 없이 편히 살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그 놈하고 만나면 호적에서 파낸다!!”
내가 모르는 어떤 실수를 했는지, 그는 부모님의 절대적 반대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아버지의 노여움까지 무릅쓰며 결국 내 감정이 이끄는 사랑을 택했다.
그것은 믿음의 순종이 아닌, 인간적 욕망의 고집이었다.
그럼에도 신혼의 시간은 행복했다.
사랑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었고, 하루하루가 꿈 같고 축제 같았다.
그때는 몰랐다.
하나님의 응답을 거절한 사랑은 언젠가 반드시 믿음의 시험대 위에 오를 것임을.
1년 뒤, 우리의 품에는 딸아이가 안겼다.
그 생명은 은혜였으나, 동시에 내 선택이 불러올 장차의 무게를 예고하는 징표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유창한 언어는 차츰 내 여린 마음을 찌르고 도려내는 비수가 되었다.
선택은 자유였으나, 그 결과는 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