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닮은 딸. 김치를 좋아하는 남편과 김치를 좋아하는 그의 딸.삼겹살에 김치는 짝꿍이라며 짝꿍 찾아서 꼭 김치를 구워 먹어야 하는 딸아이. 우리 집은 김치로 하는 요리를 좋아해요. 매운 걸 못 먹는 아이들이 많지만,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매운 걸 좋아해서 신기할 정도였답니다. 김치찌개, 김치찜, 김치볶음 그리고 떡볶이까지 매운 음식을 사랑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11월 정도쯤 시어머님은 며느리가 아닌 아들에게 전화하셔서
"올해는 김치 못 담가. 허리 아파서"라고 말씀하신다.
시어머니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효자 아들은
"엄마 허리가 너무 안 좋은데. 김장 못하신대."라며 걱정을 한다.
허리 아파 김장 안 하신다는 시어머님은 명절에 조금 담갔다며 김장 김치를 가져가라고 하신다. 이러기를 3년째. 이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장 안 하신다고 하셨다가 다시 김장을 하시고. 몇 년을 김장한다와 안 한다를 번복하셨다.(김장 도우러 오라는 것인지~ 돈을 보내라고 하시는 건지. 김장 담가서 시댁으로 보내라고 하시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친정엄마가 김장을 해서 주셨기에 시어머님의 말에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시어머님이 김장과 관련해서 "넌 네 딸이 김치 좋아하니깐 친정엄마처럼 네가 김치 만들어서 해줘라. 난 허리 아파서 사 먹으련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던가.
"시어머님~ 시어머님 아들이 김치를 무지 좋아해요. 김치의 대부분은 당신 아들이 먹는답니다. 딸아이가 먹으면 얼마나 먹겠어요. 아들이 좋아하는 김치는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고 싶었으나 입 밖으로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올해 3월, 친정엄마의 암 투병이 시작된 서면서 친정집은 김장을 안 하신다. 아니, 못하신다. 어쩜 편찮으신 와중에 김장하시려고 하실 수도 있다. 친정 부모님은 음식 맛에 매우 진심이신 분들이시다.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에 맛있다는 말씀을 거의 안 하신다. 친정엄마도 허리와 무릎이 안 좋으시지만, 딸들이직장 다니고 아이 키우는 게 안쓰러워 매년 김장에 반찬까지 신경 써 주신다. 허리와 무릎 아픈 걸로 치면 친정엄마가 더 안 좋다. 그러나 한 번도 허리 아파서 김장 못 한다고 하신 적은 없었다.(늘 하지 말라고 말씀드리지만 자식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으신다.)친정과 시댁이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친정과 시댁을 가려면 최소 4~5시간은 걸린다. 거리가 멀기에 김장할 때한두번 도와 드린 것 말고는 거의 도와드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양가 부모님의 김장 특징도 잘 모른다. 맛만 알뿐이다.(맛없어도 다른 사람이 해준 음식을 감사히 잘 먹는 편이다.)
올해 상황이 이렇다고 한들 나에게 있어 김장을 하기엔 자신이 없다. 개인적으로 요리에 흥미가 없다. 배만 부르면 되는 부류의 사람이기에 더더욱 김장을 할 자신은 없다. 어쩜 김장을 해서 양가부모님께 드려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시어머님도 김장을 안 하자니 뭔가 시원치 않아 김장을 한다 안 한다를 반복하셨겠다 싶다. 아픈 몸으로 김장하지 못하시는 친정엄마도 지금쯤 김장에 대한 불편함을 한가득 안고 계시지 않으실까 생각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장을 할 자신이 없다. 핑계를 하나 더 들자면, 정형외과에서 주사를 맞고 있는 처지라 더더욱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쿨하게 김치를 사서 양가 부모님께 보내드려야 하나 깊이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럼 김장에 대한 부담을 없앨 수 있지 않을까?(친정부모님은 뭔 김치를 사냐며 잔소리 폭탄이 떨어질 것이 만무하다.)
그래서 김장 안부 묻는 것을 쿨하게 생략하기로 했다.
"김장하셨어요?"라는 인사를 나부터 하지 않기로 했다.
김장을 마주한 이들의 다양한 반응 앞에 김장을 못하는 요알못 며느리는 자신감을 잃었다.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김장 안부는 이제 묻지도 받지도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