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특히 공중파 방송 같은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의 힘이 많이 줄어든 오늘날엔 유튜브, SNS 등의 개인 채널을 통해 평범한 누구라도 유명인이 될 수 있고, 또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장려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만연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겸손. 사람들은 아직도 성공하거나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면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연예인, 운동선수뿐 아니라 각종 인플루언서들이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돈 자랑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드는 바로 이런 와중에도 말이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면서도 겸손하는 일은 과연 양립 가능한 걸까요?
제게는 오래된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남보다 우월한 지점에 섰을 때 우쭐대는 교만함이 바로 그것입니다. 초등학교 무렵 잘난 척한다는 비난을 종종 들었죠. 이후 고립되지 않기 위해, 또래 사이에선 조심했지만 아주 숨길 순 없었습니다. 건방진 생각이지만, 무능한 몇몇 선생님의 수업을 견디는 것이 참으로 괴로웠습니다. 학창 시절 성적은 그 과목 선생님에 대한 제 호불호로 크게 갈리곤 했죠.
재밌는 건, 제가 자라는 동안의 사회 분위기 변화였습니다. 90년 말 무렵이던가요, ‘자기 PR’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랑의 작대기를 연결해 주는 TV 프로그램에서 자기 PR을 못하는 건 곧 이성을 쟁취할 수 없는 무력함을 의미했죠. 한 마디로 ‘나에 대해 당당히 말하라’였습니다. 잘났으면 잘났다고, 못나도 잘났다고 말이죠. 마치, 시대가 잘난 척하는 저의 악습을 용인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으로 돌아와 볼까요? 여전히 교만한 마음은 제 안 어딘가에서 꿈틀대고 있습니다. 물론, 어릴 때처럼 스스로 땅을 파서 끄집어내지는 않지만, 그것은 지표 아래 마그마처럼 숨죽여 흐르다가도 조건만 형성되면 불쑥불쑥 터져 나오곤 합니다. 가령,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형편없는 문장을 만났을 때라든지 말이죠.
어제는 유튜브로 <세상을 바꾸는 15분> 강연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슬아 작가 편이었는데요. 솔직히 나이도 어리고 평소 국내 소설에 대한 편견도 있었기에, 저는 의자에 반쯤 누워 ‘어디 한 번 떠들어 보시지’라는 마음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열등감 때문일까요, 독서나 글 쓰는 분야에 관한 콘텐츠를 대할 때면 자주 그렇게 오만해지곤 합니다.
그런데 웬걸? 조곤조곤하지만 힘 있는 그녀의 말에 빠져들었습니다. 듣다가 ‘어이쿠’ 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았어요. 이슬아 작가가 걸어온 길과 그 사람을 인정하고 존경하게 됐습니다. 더욱이 최근 제가 글을 쓸 때 하는 고민에 대한 언급도 해주시더군요, 많이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쩐지 글을 쓰다 보니 길을 좀 잃은 느낌이지만, 어쨌든 저는 아직도 스스로에게 묻고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말이죠. 이렇게 날 때부터 교만한 인간이 겉껍질만 포장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같이 노래나 하나 들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