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설 곳이 없다

배수의 진을 치고 글을 쓰는 것

by 양교리


다들 ‘배수진’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수진이가 누구냐고요? 후훗.

다들 아시다시피 배수의 진이란 병법에서 깊은 강이나 바다를 등지고 진영을 꾸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적군보다 수세에 밀리더라도 도망갈 길이 없는 병사들이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된다나요.




글을 쓰려고 검색을 좀 해봤는데 이 배(背)라는 글자가 참 재밌어요. 몸을 돌려 등진다는 의미인데, 누군가의 믿음을 등지는 것을 배신(背信), 몸을 뒤집어서 수영하는 건 배영(背泳), 그리고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말인 배임(背任)은 임무를 저버리는 것을 말하죠. 아, 잠시 곁길로 샜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인 만큼, 기원전부터 배수진에 대한 실례가 등장합니다. 로마를 위협하던 카르타고의 한니발, 초나라와 패권을 다투던 한나라의 한신이 각각 이 방법으로 승리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요. 정작 우리 역사 속 황산벌의 계백, 탄금대의 신립은 모두 실패한 사례라는 것이 흥미롭긴 합니다.


제가 배수진을 좋아하는 건(수진이 아닙니다!) 게으름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 늦잠을 자느라 교문이 닫히기 전까지 미친 듯이 달릴 때, 또 중간고사 이삼일을 앞두고 전 과목을 벼락치기하는 그런 순간만큼은 저 역시 탄금대 위의 절박한 병사였거든요.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보면 글을 쓰는 건, 장거리 마라톤과 닮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즉, 날마다 꾸준히 일정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겁니다. 게으른 사람이 단숨에 주파할 수 있는 레이스가 아니라는 것이죠. 가뭄에 콩 나듯 순간의 삘(?)에 의존해왔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글쓰기는 외로운 일입니다. 또 스마트폰, 친구들과의 만남 등 유혹도 많습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같은 고민을 했던 선배들이 있다는 겁니다.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는 놀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글을 쓰기 위해서 속옷까지 전부 하인에게 맡겼다고 하죠. 홀딱 벗고 밖에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 글을 쓰다 보니 반성할 점이 많습니다. 게으름으로 인해 닥친 긴박함은 어쩔 수 없이 벼랑으로 몰린 것이니 필사의 결기로 가득한 계백, 신립의 그것과 비교할 순 없겠죠. 이제부턴 제대로 알고 일상의 배수진을 쳐야겠습니다. 먼저 스마트폰을 끄고, 조용히 옷을 벗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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