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를 본 건 늦은 밤, 대학가 골목길에서였습니다. 흔하다면 흔한 타코야키 트럭을 당시 여자친구와 제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건, 사장님이 좀 특별했기 때문일 겁니다. 다마스 정도 크기의 트럭 화물칸의 작은 공간에 앉아서 꼬챙이로 열심히 빵을 뒤집고 있는 그의 얼굴은 너무도 앳되어 보였거든요. 피부가 뽀얀 20대 청년의 트럭 근처에는 또래의 손님들이 제법 모여 있었습니다. 그가 손에 쥔 건 마이크나 기타가 아니라 가냘픈 쇠꼬챙이였지만, 제 눈엔 그 광경이 꼭 대학가 버스킹 공연 같았어요. 우리는 그날의 아티스트를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접근했습니다. 그런데…
“푸핫…!”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느라 무지 혼났어요.
노란 조명 아래,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숙련된 사람이 타코야키 만드는 걸 보면 그게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꽤 쉬워 보이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청년은 양손에 든 꼬챙이로 바쁘게 틀에 부은 반죽을 뒤적이는데 사방으로 내용물이 튀고, 또 최소한의 동작으로 뒤집는 게 아니다 보니 익은 빵들은 갈가리 찢어지고요. 제법 쌀쌀한 날이었는데도 그는 날쌘 참새 같은 타코야키들에게 쫓기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입고 있던 검은색 바지는 희고 걸쭉한 반죽들이 잔뜩 튀어 그 모습이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죠.
그 무렵, 그렇게 청년들이 푸드트럭으로 창업을 시도하는 일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제 주변에도 몇 명 있었기에 학교를 다니면서 새벽같이 재료 준비를 하거나 장사할 자리를 찾는 와중에 벌어지는 단속, 다른 상인과의 마찰 등 여러 어려움들에 대해 알고 있었죠. 친구들과 겨울에 드럼통 사다가 군고구마 팔아볼까 하는 식의 농담은 쉽게 던져봤어도 막상 그렇게 진짜로 행동하는 그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그저 취업 전선에 나가기 앞서 경험을 쌓거나 용돈을 벌려고 잠깐 하는 식이라 그때 그 타코야키 청년에 대한 강한 인상도 금방 제 머릿속에서는 사라지고 말았죠.
이게 정말 내가 찾던 일일까?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도 해봤지만 이게 맞나?라는 회의가 수시로 엄습했습니다. 자신 있게 직장을 그만두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진짜 내 꿈은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술집이나 볼링장에서 아르바이트 생활을 전전했습니다. 꿈과 현실의 괴리를 실감하고 있음에도, 막상 현실에 잘 적응해 사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어느 쪽이 꿈이고 어느 쪽이 현실인지조차 헷갈리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자주 방향을 잃고 헤맸어요. 게다가 사랑에도 실패했을 땐 감당하기 벅찬 우울감 속에 허우적거리기도 했습니다. 나는 참 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아요.
어느덧 30대를 훌쩍 넘겨버렸습니다.
첨엔 믿기지 않았습니다. 매일 거울 속에 비친 다소 지친 제 얼굴을 보아도요. 그렇지만 작년 초 여동생이 낳은 조카를 안아 들고 그 싱그러운 생명력에 감탄하고 있노라면, 쓸쓸하게 제 나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받아들이고 앞으로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다시 집중해 보려 하는 요즘입니다.
청년은 아직 타코야키를 굽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시내를 혼자 거닐었습니다. 노트도 새로 살 겸 집 근처를 벗어나 본 건데요. 시내 카페에서 저녁 무렵까지 글을 쓰다 다시 집으로 향하는데 저 멀리 길가에 보이는 반가운 트럭. 네 타코야키 청년이었습니다. 처음 그를 본 지 못해도 6년 이상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못 본 새 트럭 외관이 꽤 화려해졌고요. 부러 다가가진 않아서 실력이 많이 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본업은 따로 있는 건지, 그동안 점포를 차릴 만큼은 돈을 벌진 못한 건지 따위의 여부도 중요치 않았어요. 그저 오랜 세월 꿋꿋이 버텨준 그가 왠지 모르게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진 않아도 세상 한 귀퉁이에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타코야키 청년 고마워요. 당신도 저도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