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종소리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by 양교리


꽤 오래 전의 일입니다. 당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낮에는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밤에는 라이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인심 좋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장님 내외가 운영하는 가게로, 통기타를 둘러멘 음악인들이 자주 찾는 아지트 같은 곳이었습니다. 주로 중년의 손님들이 이곳에 와서 김광석, 이글스, 비지스 같은 노래를 들으며 자신들의 흘러간 청춘을 떠올리는 듯했어요.


굉장히 재밌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따듯하고 흥겨운 곳에서 커다란 카우보이모자를 눌러쓰고 재밌게 일했습니다. 단골손님들과의 사이도 좋았고, 그중 제 사정을 물어오는 몇몇 분께 작가가 되려 한다는 꿈을 겸연쩍게 밝히면 그것참 멋지다고 격려를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 부부도 그런 손님 중의 하나였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오시곤 했는데 나이는 50대쯤, 어딘가 시골 사람 특유의 소박함이 얼굴뿐 아니라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배어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갓 성인이 된 두 자녀까지 동반해 온 가족이 가게를 찾았는데 주로 연인, 동료들이 모여 회식을 나누는 이곳에선 흔한 광경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따듯한 모습에 눈길이 갔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과 처음 외식을 했던 저의 기억, 성탄절 무렵 그날의 따듯한 분위기가 떠올라 괜스레 뭉클했죠. 이후로 그 부부에 대한 제 관심이 커졌습니다.




어느 늦은 저녁, 딸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데 익숙한 얼굴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저는 반갑게 부부를 맞이했습니다.

그날은 가게가 붐벼서 평소 부부가 좋아하던 2층 자리는 다른 손님들이 차지하고 있었죠. 라이브 공연이 잘 안 보이는 1층 구석진 테이블뿐이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부부는 괜찮다고 절 향해 소박하게 웃어주었습니다.




한참 뒤 벨이 울려 그들을 찾아갔는데, 남편분이 몹시 민망한 투로 말했습니다.


“저기… 죄송한데 이거 맥주 500 짜리를 취소하고 피처로 주시면 안 될까요?”


“네? 어….”


“이이는. 가져온 술을 어떻게 취소해요. 죄송해요. 가셔서 일 보세요.”


당황한 제가 머뭇거리자 맞은편의 아내분이 조곤조곤한 소리로 남편을 타박함과 동시에, 저를 구해주었습니다. 속으로 다행이라며, 멋쩍게 돌아서려는데 테이블 위 두 개의 안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사람이 먹기엔 벅찬 양이었죠. 평소에도 늘 그렇게 시키고 남은 음식을 싸가곤 했던 일이 그제야 떠올랐습니다.


그건, 분명 우리 가게를 위한 그들의 배려였습니다. 아주 당당하게 안주를 시키지 않고 술만 마시는 손님도 허다했죠. 언제나 손해를 보는 건 그렇게 좋은 마음씨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알아줘야 했습니다.




잠시 후 뭔가 기특한 일을 한다는 생각에 배시시 웃으며 그들을 다시 찾았습니다.


“손님, 여기요. 드시던 건 취소해 드리고 피처로 가져왔어요. 사장님껜 비밀이요.”


갑작스러운 내 방문에 놀란 표정을 짓는 그들에게 맥주를 건네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리고요, 안주 한 개만 시키셔도 돼요.”


선량한 부부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지어졌을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성탄절이 자꾸 떠올랐어요. 제가 건넨 작은 친절에 비하면 너무도 과분한 그들의 말과 행동에 몸 둘 바를 몰랐던 건 오히려 저였습니다. 마음이 자꾸만 간지러워서 그날은 일하면서 미소를 참기 어렵더군요.




한참이 지나서였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글 쓰시는 꿈도 응원해요. 그리고 이건 아내가 드리는 선물이래요.”


투박한 손으로 남편분이 제 손에 쥐여준 건 화초를 그린 서투른 그림과 만 원짜리 한 장이었습니다. 부부는 한사코 거절하는 저를 뒤로하고, 늘 그렇듯 남은 음식을 포장해서 나갔습니다.


딸그랑…. 그들을 닮아 조용한 종소리가 오래도록 맘속에 남았습니다. 가끔은 지독하게 사람이 싫어지는 저이지만, 어떤 이들 때문에 끝내는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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