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다닌 고등학교는 지역에서 유명한 사립학교다. 전국 대회를 석권하는 야구부도 자랑거리고, 몇 회 졸업생 때 서울대를 50명 보냈느니 하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되는 소위 명문이었지만 그것도 입학고사로 수재들을 선별해 뽑던 과거의 일로, 그가 입학할 당시엔 그런 트로피들도 다소 빛이 바래있었다.
물론,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설립부터 함께 영광의 탑을 쌓아 올렸던 개국공신 같은 나이 든 선생님들, 그리고 얼룩말 같은 제련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배우던 시절의 엄격한 규율과 체벌이 바로 그것이었다.
정말 요즘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폭력이 학교 안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했다. 담배를 몰래 피우다 걸려 끌려간 친구의 셔츠엔 구둣발 자국이 나기도 했고, 셔츠가 바지 밖으로 빠져나왔거나, 넥타이가 풀려있거나, 급식을 남겼거나, 체육 시간에 교복 정리를 잘 안 했거나 등 정말 갖가지 이유들로 학생들은 맞았다. 직접 따귀를 맞는 것에 비하면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는 건 차라리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명찰은 일종의 증명서였다. 교복 상의에 달고 다녀야 하는 손바닥 절반 정도 크기의 플라스틱 명찰을 지각을 하거나 두발 상태가 불량하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선생님들에게 빼앗기면 그때부터는 괴로운 시간이 시작된다. 명찰이 없다는 건 뭔가 불량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니까 그 자체로 낙인이었고 체벌의 대상이 되었다. 언제고 검문에 붙들릴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괴로웠지만, 하이라이트는 빼앗긴 명찰을 돌려받는 월말 아침이었다. 기다란 교내 비탈길을 허벅지가 터지게 오리걸음으로 오르고, 흙먼지 자욱한 운동장을 정신없이 뛰는 등 각종 얼차려를 받고 나서야 학생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대체로 평범하다랄 수 있는 학생인 남자가 이런 사정을 상세히 알고 있는 건 순전히 게으름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정말 힘들었던 그는, 지각에 관해서는 여느 문제아 못지않았다.
아버지가 사준 자명종 시계의 깨질듯한 타종 소리도 별 효과가 없었다. 3분만, 하고 중얼거리곤 다시 눈을 뜨면 30분이 지나있었다. 산 중턱을 깎아 위치한 학교까지는 시내버스에 내려서도 경사진 숲길을 한참 올라야 했다. 남자는 아침마다 그 길을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아슬아슬하게 교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가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하고 붙들리면 앞서 말한 지옥주의 시작이었다.
한 번은 굳게 닫힌 교문 너머의 동태를 살피다가 차마 그리로 나설 자신이 없어 자포자기 식으로 1교시를 통째로 빼먹은 적이 있는데, 의외로 결과가 괜찮았다. 학생과 선생님에게 명찰을 빼앗기는 것보다는 담임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고 마는 쪽이 유리하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 했던가. 간덩이가 커진 남자는 그 후로 아싸리 늦은 시각에 학교 담장을 넘는 대도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중한 명찰을, 학교 뺏지를 달지 않았다는 하찮은 이유로 아주 허무하게 빼앗겨버렸다. 바로 얼마 전에 명찰을 빼앗기고 한 달간의 혹독한 시간을 겪었던 그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뭔가 알 수 없는 전산오류로 인해 만기의 복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재입대 통지를 받을 때의 심정이 그러할까? 차라리 엉덩이가 터지게 몰매를 맞으면 맞았지, 사람 피를 말리는 그 한 달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후들거리는 종아리와 붉게 상기된 두 뺨의 시간, 거친 욕설과 손찌검의 시간, 흙먼지와 땀범벅인 구정물 같은 시간으로 말이다. 남자는 그날 처음으로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말을 실감했다.
아직 한 밤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시각이었다. 해가 짧은 계절이었다. 숲길로 들어서자 한층 어두웠다. 지켜보는 이라곤 나무 사이로 얼핏 보이는 초승달 하나가 전부였다. 나뭇가지나 솔방울을 밟아 우지끈하는 소리에도 마른침을 꼴깍 삼켜가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남자는 오늘의 거사를 위해, 난생처음 첫 차를 타는 기염을 토했다. 밀려드는 불안감에 잠은 거의 못 자고 나왔지만, 그 어떤 등굣길보다 정신이 또렷했다.
“도둑…, 아니 도적…아니다, 의적.”
그렇게 중얼거리며 결의를 다진다. 그리고 이를 꽉 깨물고 덧붙인다. “잡히면, 죽는다.”
교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제 될 건 없었다. 발을 헛디뎌 형편없이 구르는 상상을 하면서,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담장을 넘었다. 아름드리나무가 쭉 이어진 길을 따라 본관 건물로 향했다. 날은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남자는 다급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학생과 문 앞에 서고 나서야 남자는 깨달았다. ‘문이 잠겨있으면 어쩌지?’ 그건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다. 그저 첫차만 타고 아무도 없는 학교에 도착하기만 하면 될 줄로 알았던 것이다. 어설픈 도둑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차가운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쩌적…”
괴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남자는 새삼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의식했다. 다른 곳도 아닌 공포의 대상인 선생님들의 본거지와 같은 학생과 사무실에 몰래 들어온다는 것 말이다. 아마 선량한 보통의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와볼 일이 없는 곳이었다. 궁지에 몰리지 않았더라면 소심한 그가 괴수들이 가득한 던전의 문을 여는 일 따위, 꿈에도 생각 못 했을 일이다. 그렇지만 결국 자신의 죄를 더 큰 죄로 덮기 위해 지옥문에 들어섰다. 이제부터는 모 아니면 도였다.
커튼이 쳐있는 실내는 몹시 어두웠다. 갑자기 거칠고 투박한 손이 자신의 어깨를 내리치는 망상에 시달려가며 남자는, 눈을 감고 망막이 어둠에 적응하기를 기다렸다. 조금 후 일자로 늘어선 책상들 중 하나에 올려져 있는 명찰을 담은 종이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학생과에 끌려왔을 때 봐두었던 것이다. 그것이 캐비닛도 아니고 책상 위에 떡하니 있었다. 빼앗긴 이들에게 그토록 간절한 것임에 비해 허술하기 짝이 없는 관리였다. 헛웃음이 났다. 하긴, 그 누가 감히 학생과에 몰래 들어와 훔칠 생각을 하겠냐마는.
그날 오후, 학교는 뒤집어졌다. 일본어 수업 때였는데, 갑자기 스피커로 전 교내에 방송이 나왔다.
“아, 아, 오늘 학생과에서 명찰 통 훔쳐 간 놈 알아서 자수해라. 가만 안 둔다.”
학교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체육 선생님이었다. 과장 없이 전교생 중에 그에게 안 맞아본 학생이 드물 정도였다. 짧지만 강렬한 엄포가 울리자, 아이들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야 어떤 돌아이가 저거 훔쳤지’ 하면서 난리였지만, 남자는 웃을 수 없었다. 꼭 경찰에 수배된 도둑의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자수하면 감형이라도 받을 거라고 믿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 사건은 오래지 않아 잊혔다. 학생과의 그 엄중한 선포에도 불구하고 심지 굳은 도둑은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가 잠잠해진 어느 날, 사물함에 몰래 보관해두었던 명찰 상자를 이동수업 교실에 가져다 놓았다. 다른 주인들이 명찰을 찾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한동안 학생들 사이에선 학생과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한 정체 모를 의적에 관한 미담이 떠돌았다.
이 이야기는 그날 이후 남자가 지각 따위는 모르는 성실한 학생이 되었다,는 식의 교훈 같은 건 없다. 졸업을 하고 대학과 직장에 가서도 그의 아침은 거의 비명으로 시작해 ‘이 병신아, 구제불능아’ 하는 자기모멸과, 얼굴에 물만 겨우 묻히고 발에 땀나게 뛰어다니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다만 이십 년 정도 지난 일이니 그 정도의 죄는 추억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제멋대로 식의 마음으로 글을 쓰면서 이 게으른 남자는 웃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