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삿갓

미용실에 간다는 건

by 양교리


동네에 2층짜리 커다란 미용실이 새로 생겼다. 마침 덥수룩한 내 모습을 스스로도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나는 인터넷으로 예약 시간을 살폈다. 가장 빠른 타임은 10시 30분. 씻고 나가면서 예약을 하면 얼추 적당할 듯싶었다. 가게에서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의 채비를 갖춰 길을 나서는데 아뿔싸, 그새 누가 예약을 채갔다. 내심 잘 됐다고 생각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자주 다니는 카페에 와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슬쩍 본 카드 단말기 화면에는 역시나 4800원. 이 중년의 직원은 나를 알아보고 곧잘 500원씩 빼주곤 했지만, 언제부턴가는 꼬박꼬박 제값을 받고 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처음부터 그럴 필요 없다고 했잖아. 사람들은 이쪽에선 원치 않는 호의를 제멋대로 베풀고는 다시 언제 그랬냐는듯한 얼굴로 거두어간다. 그게 돈이든 친절이든 말이다.


내가 미용실 가기를 기피하는 것도 실은 귀찮아서만은 아니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사람들의 변덕이 보기 싫어서다. 어느 날은 재잘재잘 자기 얘기뿐 아니라 웃으며 내 얘기도 궁금해하는 그들에게, 순진하게도 엉뚱한 기대마저 품었더랬다. 하지만 다음번 방문은 어김없이 나를 배신했다. 동료 미용사와 떠들며 마네킹 취급하거나 첨 보는 사람 대하듯 삭막하기 그지없다.


그 뒤로 이리저리 떠돌게 된 것이다. 같은 곳을 연속으로 방문하는 일은 없었다. 어딜가든 첫 만남이 곧 마지막 만남이었다.


온라인에는 ‘미용실 유목민’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들은 미용실 본래의 기능적 측면에 만족하지 못해서 헤맨다. 그러나 좀 더 복잡한 사정을 품고 있는 나 같은 이들은 ‘미용실 방랑객’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비옥한 땅을 만나면 기꺼이 정착할 의사가 있는 유목민에 비해, 방랑객에겐 누구와도 정을 주고받지 않고 하염없이 떠도는 것만이 그들의 숙명 같기 때문이다.


자, 마지못해 삿갓 끈을 묶고 향할 다음 미용실은 어디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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