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제은 교수의 자기 사랑 노트]
"자기 사랑 하나 -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살아라"를 읽고 적은 자기 사랑 노트입니다.
그날도 큰 딸은 "하... 학교 가기 싫어."라고 힘없는 목소리로, 하지만 분노가 가득 찬 표정으로 말하며 현관문을 나섰다.
애써 밝은 목소리로 잘 다녀오라는 나의 목소리는 '꽝' 닫히는 문소리에 묻혔다.
너무 힘들었다.
내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어떤 것에서도 나는 금방 정답을 만들어냈었다.
놀이터에서 더 놀고 싶어서 집에 가기 싫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말하는 방법.
장난감은 사지 않기로 약속해 놓고 콩순이 앞에서 떠나지 못하는 아이에게 말하는 방법.
중학생이 될 때 까지도 휴대폰 사용 통제 한 번 하지 않고 제 할 일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까지.
나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엄마 그 자체였다.
빈 집에서 매일 울었다. 중학생 두 아이를 데리고 큰 포부를 가지고 제주도로 내려온 지 한 달이 막 지날 때였다.
큰 딸이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다시 짐을 싸서 육지로 돌아가야 하나?
내가 정답을 모르는 실패한 엄마가 된다고?
아냐, 그럴 순 없어.
큰 딸이 힘든 모습으로 학교에 간 날이면 바로 식탁에 앉아 편지를 썼다.
손이 벌벌 떨렸다. 학교에서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불안한 내 마음이 고스란히 문장에 적혔다.
"하루종일 너를 생각하고 있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엄마는 너무 걱정이 돼."
시계만 보며 큰 딸을 기다렸다.
하교하는 학생들 속에서 내 딸을 찾느라 창문에 붙어 서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엄마~ 나 왔어!" 밝은 목소리로 하교를 하는 딸을 보면 두 다리가 풀릴 만큼 긴장이 덜어졌다.
'다행이다!' 그리곤 책상 위에 올려뒀던 편지를 딸이 보기 전에 얼른 감췄다.
그러다 또 어느 날은, 굳은 표정으로 인사도 없이 집에 들어와 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엎드리는 딸을 보면 내 마음에 두려운 감정들이 가득 찼다.
큰 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어했다.
나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엄마였기에 내가 내린 정답은 그 힘듦을 깊이 공감해 주고 해결해 주기였다.
아침부터 나는 딸을 사랑해 줬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머리를 말려줬다. 온몸에 로션도 발라주고 옷도 다 입혀줬다.
양말을 바짝 올려 신겼다고 딸이 짜증을 내면 "미안해~"라고 말했다.
어느 날은 찬물을 줬다고 짜증을 냈고, 어느 날은 미지근한 물을 줬다고 짜증을 냈다.
난 정말 좋은 엄마가 되려 노력했다. 한 번도 싫은 내색 보이지 않고 다 맞춰줬다. 내가 이렇게 사랑해 주면 아이도 곧 안정감을 갖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거라 믿고 견뎠다.
딸과의 관계를 걱정하며 "그 정도면 한 번은 혼내도 되지 않겠어?" 하는 남편에게도 말했다.
"여보, 걱정 마. 나 같은 엄마가 어디 있어!"
이상하게 딸은 점점 더 짜증이 늘어갔다.
단순히 사춘기의 반항이나 감정 기복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를 보며 방금까지 웃고 있던 딸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엄마. 아, 들어봐 봐. 진짜, 학교 너무 싫은 게..." 라며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또 그래. 엄마만 보면 '오늘 안 좋은 일이 뭐가 있었더라?'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일은 없었어?"
"좋은 일? 하나도 없었어! 매일이 최악인데?"
"엄마가 들어보면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뭘... 우리 oo이가 매사에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는 거 아니야?"
"엄마!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엄마는 이게 별게 아닌 거 같아? 그럼 내가 누구한테 말해? 엄마가 안 들어주면 나는 혼자서 삭히라는 거야?"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엄마도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는데 매일 그런 부정적인 말을 듣기가 좀..."
"누가 해결해 달래? 그냥 내 말 들어주면 안 돼? 내가 이렇게 힘들다는데 엄마는 왜 아무렇지 않아?"
큰 딸은 엄청나게 감정이 격해졌다. 나는 서둘러 또 늘 그랬듯 "아니야. 엄마도 다 알아. 매일 아무 일 없는지 엄마도 얼마나 불안한데. 엄마 집에서 매일 울어. 엄마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어찌할지 몰라하며 몸도 마음도 잔뜩 가라앉으면 그제야 딸의 감정도 가라앉았다.
제주에서 글쓰기를 하고 싶은 엄마들의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제주에 온 지 3개월이 지나도록 아는 사람 한 명 사귀지 않은 나에겐 큰 모험이었다.
어떤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게 낯선 사람들을 만나러 자리에 나갔다.
글을 꾸준히 쓰고 싶었지만 끝맺음이 어려웠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정리가 되지 않았던 나는 글쓰기 모임에서 그럴듯한 글을 쓰고 책으로도 엮고 싶었다.
글쓰기 모임 리더선생님이 자신이 잘 쓸 수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 독자들이 나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보라고 하셨다. 나는 단번에 "좋은 엄마"로서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춘기 딸에게도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늘 사랑으로 감싸는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두 번째 글쓰기 모임에서 우리는 각자 내면에 담고 있지만 알지 못했던 진짜 나의 이야기를 알기 위해 "더원트카드"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며 카드에 적힌 수많은 단어들 중 하나를 골라 보기로 했다.
나는 분노가 있는 엄마도 아니었고, 후회를 하는 엄마도 아니었다. 수치심, 무기력, 복잡함... 모든 단어들이 와닿지 않았다.
나는 해 줄 많이 많은 40대 중반의 사춘기 아이들을 둔 선배맘이었다. 내 내면엔 그런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나에게 장애물이란 게 있을까?'
그때 "불안"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뭐... 굳이 고르라면 불안?
리더선생님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왜 불안 카드를 고르셨어요?"
"요즘에 좀... 큰 딸이 제주에 와서 적응하느라 힘들어하고, 학교생활도 많이 달라지고 하니까 불안해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제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아침부터 엄청 상전 모시듯이 해주거든요. 머리 말려줘, 양말 신겨줘, 밥도 떠먹여 줘..."
나는 또 내가 얼마나 좋은 엄마이고, 정답을 찾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지 말했다.
"카드를 뒤집어서 그림을 보시겠어요? 어떤 느낌이 드세요?"
"여기 이 사람은 울고, 가면은 웃고 있네요... 내가 울면서 걱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만큼 딸이 웃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정말 그렇게 느껴지세요? 엄마가 울고, 딸이 웃는 걸로 보이세요?"
"우는 게 딸인가?... 갑자기 마음이 이상해요. 좀 헷갈려요. 잘 모르겠어요."
나는 그 이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마음과 머릿속이 이상해졌고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슬픈 감정이 가득 차 올랐다. 리더선생님은 딸과 엄마의 감정은 다른 것이며, 딸은 딸이고 엄마는 엄마라고 하셨다. 지금 타이밍이 너무 중요하니 빨리 감정의 관계를 정리해 보라고 하셨다.
다행히도 모임 시간이 다 되어 서둘러 이야기가 마쳐졌다. 모임이 끝나자마자 나는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집으로 돌아왔다. 길을 걸으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상했다.
나는 그냥 딸이 불안해하는 요즘의 상황을 말했고 그걸 옆에서 얼마나 잘 다독거리며 서포트해 주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불안도 사실 나의 장애물이 아니었다. 딸이 느끼는 불안을 말하고 싶었다.
집으로 걸어오는데 갑자기 나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40년 넘게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던 엄마의 모습과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가 학교 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보기 위해 베란다 창문에 서 계시던 엄마. 오빠 방에서 오빠 시중을 들어주면서 등교 준비를 해주던 엄마. 오빠가 양말이 마음에 안 든다며 짜증을 내면 얼른 다른 양말을 가져다주고, 이불의 매무새까지 오빠 마음에 들도록 정리해 주던 엄마.
장면의 먼 앵글에서는 10살쯤 되어 보이는 내가, 그런 엄마를 조용히 보고 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갑자기 왜 이게 떠오른 거지? 난 한 번도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그랬잖아!" 하면서 이런 기억을 가슴에 안고 살지도 않았다. 엄마에 대해 원망이나 서운함도 없이 자라왔었기 때문이다. 리더선생님이 "어렸을 때 섭섭하게 자란 기억 있으시죠?"라고 하지도 않으셨는데,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교해서 돌아온 딸을 보니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정답을 몰랐지만 그냥 몸이 이끌려 딸에게 갔다.
"엄마가... 오늘 신기한 경험을 했어. 그리고 든 생각이 있어."
울먹거리는 나를 보더니 딸 역시 1초 만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엄마가 그동안 oo이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 마치 엄마가 힘든 것처럼 너무 마음이 아팠어. 그래서 oo이의 그 힘듦을 다 없애주고 싶었어. 스스로 견뎌보고, 극복해 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것 같아. 그냥 옆에서 들어주고 지켜봐 줘야 했는데. 엄만 다 해주고 싶었어. oo이가 혼자 이겨낼 용기가 있는데 그럴 마음을 가질 시간도 안 줬다는 걸 오늘 알았어."
"엄마... 나 엄마가 무슨 말하는지 알아. 나도 그동안 좀 너무 심했지?"
우리는 둘이 울다 웃으며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자,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래, 그런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그냥 큰 딸과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고 나 스스로 인정하고 싶었다. 나는 좋은 엄마도 아니었고, 앞으로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무런 타이틀도 붙지 않고 그냥 "엄마"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을 살며 내 감정을 느끼고, 딸은 딸의 삶을 살며 딸의 감정을 느끼면 되는 것이었다.
제주에 와서 우리 가족은 새로운 환경에 놓였고 관계의 폭이 엄청나게 좁아졌었다.
나는 제주까지 왔으니 다 잘 해내야 한다는 불안을 채워줄 장치가 필요했고, 큰 딸은 학교 적응과 학업에 대한 불안을 채워줄 장치가 필요했다. 우리는 자석처럼 붙어 불안을 키워갔고, 그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며 서로에게 집착한 게 아닌가 싶다.
그 와중에 나의 내면에는 불안이 많았던 엄마를 바라보던 내면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는 혼자 외로움을 겪으며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아야겠단 생각을 하며 자랐나 보다. 혼자 힘들어하는 내 딸을 보니 외로웠던 내가 떠올랐는지 "내 딸은 혼자 겪지 않게 할 거야. 엄마로서 나는 다 해주고 다 느껴주고 다 감당해 줄 거야." 한 게 아니었을까?
솔직히 이 시간들을 지내오는 요즘, 정확한 "나"를 다 알고 파악하진 못했다. 그저 "혹시 그런 게 아니었을까?" 라며 하나씩 퍼즐을 맞춰가고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제니스 님, 지금 말씀하실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신기하다'라는 거 아세요? 앞으로 '신기하다'라는 말을 '감사하다'로 바꿔서 표현해 보세요. 신기하게 흘러갈 것을 감사함으로 온전히 느끼고 내 것으로 만드세요."
리더선생님의 말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감사하다.
나에게 고통이 있었음을 내가 알게 되어 감사하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이제야 비로소 내가 들어주게 되어 감사하다.
엄마가 되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