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어서 와! 환영해!

by 제니스코치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매주 수요일을 기다리던 나였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무거운 마음에 모임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껏 치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 사랑이 가득하고 환희의 기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젯밤 큰 아이와 나 사이에 또다시 장애물이 나타났다.

아침까지 분노와 슬픔이 사라지지 않아 눈을 뜨자마자 대충 아침을 차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나를 위한 땀을 흘리기 위해 달리지 않았다.

화가 가득한 마음으로 걸었다.

바닷가에 앉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딸을 미워하며 어젯밤 딸에게 쏟아부었던 내 말들을 다시 꺼냈다.



네가 어떻게 엄마한테 이럴 수 있어. 엄마가 요즘 상처받은 내면아이 꺼내고 글을 쓰면서 치유하는 거 너 몰라? 엄마는 이렇게 노력하고 공부하고 변화하려고 애쓰는데 왜 엄마를 힘들게 해?

나는 너에게 좋은 엄마가 되려고 그렇게 사랑을 주고 참아주고 애써왔는데, 뭐가 그렇게 부족한 거야?

내가 얼마나 착한 엄마였는데, 왜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거야?



바다를 쳐다보며 씩씩거렸다. 달리기를 하던 20여 일의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했다.

'달리긴 뭘 달려. 나아가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로 와버렸잖아.'

[오제은교수의 자기 사랑노트]의 챕터는 끝을 향해 가고 있는데, 결국 해피엔딩도 아니었다.

'글쓰기 모임도 가기 싫어. 가서 분노하는 이 마음을 부끄럽게 어떻게 말해.'


아이들 등교시간이 지나서야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큰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교하고 돌아올 아이의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답답해졌다.

둘째는 무슨 마음일까. 어느 날은 엄마와 언니가 내면이 어쩌고 자기 사랑이 어쩌고 하면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것처럼 굴다가, 또 어느 날은 어젯밤처럼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어 놓으니 말이다.

첫째와의 관계도 챙겨야 하는데, 그러면서 둘째에게도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으니 정말 내 가정의 평온이 한순간에 다 깨져버린 느낌이고 다 내 탓처럼 느껴졌다.


꾸역꾸역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글쓰기 모임에 갔다.

'어제 있었던 일은 말하지 말자. 그냥 별일 없었던 듯 자리를 채우다가 오자.'


오늘 글쓰기 모임에서 준비한 자료는 오제은 교수님의 강연 중 하나인 "문제를 보는 시각"에 대한 영상이었다.


"문제를 대하는 나의 시각을 바꿔라.

지금껏 써왔던 방법을 다 갈아치워라.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바로 문제이다.

그리고 잘못된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마음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영상이 끝나고 우리는 다 같이 "문제"에 대한 글을 썼다.


어젯밤, 잠깐 10분만 잔다며 "엄마, 나 10분 뒤에 꼭 깨워줘!" 했던 딸이었다.

10분 뒤 나는 딸이 제일 좋아하는 등 긁어주기를 하면서 살포시 깨워주었다. 딸은 잠결에 '10분만 더'라고 말했고, 나는 10분 뒤, 또 10분 뒤 그렇게 총 3번을 깨웠다.

"이제 일어나야지~ 30분이 지났네. 자~ 일어나자. 읏챠!"

다정하게 말하는 나에게 딸이 확 짜증을 냈다.

"아 뭐야~ 내가 깨우라고 했잖아! 엄마 때문에 30분 지났잖아. 아 몰라!"

순간, 나는 엄청난 분노가 차올랐다.

싱크대로 달려가 설거지를 하며 그릇에 내 분노를 쏟았다.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아서 설거지 장갑을 던져버리고, 그대로 딸이 벗어놓은 체육복도 딸의 방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내 감정을 쏟아냈다.

오늘 아침 바닷가에 앉아했던 바로 그 말이었다. 네가 어떻게 나에게 감사하지 않고 나를 인정하지 않고 막 대할 수 있냐고.


지금 이 순간 나의 문제는? 바로 딸이었다.

"나를 인정하지 않고 감사해하지 않는 딸이 문제야.

나는 이렇게 딸과의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데, 딸은 나를 상처 주고 쉽게 대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사랑하고 잘 키우려고 노력했는데. 내가 얼마나 착한 엄마인데.

그런데 정말 딸이 나에게 잘못한 것일까?

딸이 나를 정말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을까.

왜 나는 딸에게 이런 인정을 받고 싶어 할까?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글을 쓰다 보니 온통 물음표였다.

자신을 깨우지 않아 짜증이 난 딸은 이제 잘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난 왜 이렇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감사받고 싶어 하는 걸까.


글을 다 쓰고 난 뒤, 오제은교수님의 강연 영상이 계속되었다.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던 나에게 또다시 갑작스럽게 내면아이가 찾아오고, 상처가 드러날 때 반갑게 맞이하라.

"너, 내가 필요해서 왔구나!"

"나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어서 왔구나. 어서 와! 환영해!"라고 말해줘라.

꿈을 꾸듯이 그 메시지를 받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풀어라.

파티를 즐기 듯, 좋은 음식을 먹으며 잘 대우해 주 듯 신나게 맞이해라.


또 오제은 교수님은 이런 말을 덧붙이셨다.


아이들을 걱정하지 마라. 간섭하지 마라.

아이 앞에서 절대로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라.

내가 받아보지 못한 건 아이에게 줄 수 없다.


글쓰기 모임에서 집까지는 4km의 거리었다.

매일 달리면서 나를 사랑하고 싶었던 나는 오늘 20여 일 만에 처음으로 달리지 않았다.

달리면 결승선에 도달할 줄 알았는데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던 나와 딸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집까지 달려보세요! 오늘 딱이네요!"

리더선생님이 나에게 말하셨다.

"그럴까요?"

나는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맨 처음 '달려볼까?'라고 생각했던 아이의 개학날처럼, 또 시작되었다.


인도도 없는 시골 2차선 초행길을 휴대폰지도를 보며 달렸다.

차가 올 때는 수풀로 몸을 비켜줘야 하는 길이었고 울퉁불퉁한 길이 달리기 쉽지 않았다.

15년 전 이런 길을 걸었던 때가 생각났다.

나는 한 달 뒤면 큰 아이를 출산하게 될 만삭의 임산부였다.

결혼하고 남편을 따라 아산에 있는 한 시골에서 살고 있었다.

유난히도 눈이 많이 오는 아산이라, 그 겨울에도 눈이 참 많이 왔다.

나는 버스를 잘못 타서 어떤 인적이 드문 마을 종점에 내리게 되었다.

'뭐 좀 걸어가면 또 버스 오고, 아니면 택시를 불러 타면 되겠지.'

다음 버스는 한 시간 뒤에나 있었고, 택시는 이곳까지 오지 않는다고 하여 나는 하는 수 없이 큰길까지 눈 쌓인 2차선 도로를 걸었다. 인도도 없고 다니는 사람들도 없어서 눈이 쌓여 종아리까지 푹푹 빠졌다.

한참을 걸으니 두꺼운 외투를 입었어도 배가 차가워졌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뱃속 아기가 잘 못 될 것 같았다.

나는 목도리를 빼서 배에 두르고 손으로 바람을 막으며 아기에게 말했다.

"괜찮아. 엄마가 지켜줄게. 괜찮아. "


오늘 시골길을 뛰며 이때 생각이 났다.

이렇게 보호하고 사랑하고 싶었던 내 딸인데, 내가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내가 어린 시절 받지 못한 사랑과 인정을 딸에게 갈구하고 있었다.


엄마, 나 너무 좋은 딸이잖아. 칭찬받고 싶어.

엄마, 있는 그대로 나 그냥 인정해 줘. 나 계속 잘하는 거 힘들어.

내가 어떤 것을 해도 엄마는 왜 그 이상을 바라는거야? 내가 얼마큼 더 잘해야 해?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딸에게 그대로 쏟아낸 나를 느꼈다.

나의 어린 내면아이가 어린 내 큰 딸 앞에 서서, 삐지고 투정 부리고 떼를 쓰고 있었다.

자기 사랑노트를 읽고 한 권이 다 끝나가면서 나는 챕터별로 성실하게 내면아이를 만나려 했고, 글을 써왔다. 그리고 나와 딸의 불안이 만나 서로에게 잘못된 사랑으로 표현되었고 꽉 움켜잡았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알았으니 다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딸과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내 인생을 살면, 그게 나를 사랑하는 멋진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마음이 편안해졌고 관계가 여유로워짐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도 내 옆에는 내 내면아이가 떠나지 못했다. 또 다른 내면아이인지, 아니면 처음 그 아이인지, 내 손을 잡고 "할 말이 있어. 듣고 싶은 말도 있어."라고 하고 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은 엄마라는 내가, 내 아이들을 키운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말과 인정을 앵무새처럼 아이들에게 책 읽듯 전해주며 좋은 엄마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그런 실력을 갖추지 못한 엄마였다. 나는 다시 자라야 한다. 단단하고 커다란 진정한 어른의 내가 되어서, 나를 키워야 한다.


너는 있는 그대로 축복이야.

너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

누구를 위해서, 칭찬받기 위해서 살 필요 없어.

너는 그냥 너야.

네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그냥 기쁨이야.


앵무새가 아닌 진심으로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4km를 다 뛰고 땀과 눈물이 범벅인 채로 현관문을 열었다.

또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받아들일 내가 들어오자마자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어서 와!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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