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속에서 진짜 상처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제 우리 글쓰기 모임은 ‘글쓰기를 통한 내면아이 치유’의 모임이 되었다.
길을 걷다 갑자기 생각났던 과거이 한 장면 속의 어린 나의 모습은 바로 나의 '내면아이'였다.
지금껏 나는 '내면아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보지도 않고 살아왔다. 몇 번은 들어봤겠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었을 것이다.
나는 사랑받고 부족함 없이 자란, 그래서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며 자라왔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남편을 만나 두 아이를 낳고 완벽한 아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의 타이틀을 가지고 15년을 넘게 살아왔다.
커리어에서도 부족함이 없으니, 40대의 나의 삶이 얼마나 자랑스러웠겠는가.
그런 내가 이제는 매일 밤 글을 쓰며 엉엉 울고 있었다.
어린 내면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나 정말 잘하고 있거든. 엄마가 나를 칭찬해 주면 좋겠어. 나를 보고, 나를 안아주면서 ‘고마워, 너는 정말 자랑스러운 딸이야. 못해도 괜찮아. 엄마는 있는 그대로 너를 사랑해.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 불안해하지 마.’
난 이 말이 듣고 싶었어.”
내면아이의 말을 듣고 있으면 너무도 안쓰럽고 속상했다.
“그런 아픔을 가지고 살아오느라 고생했어. 난 지금까지 몰랐어. 나마저 몰라준 이 시간들이 너는 얼마나 외로웠니. 지금의 내가 너를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파.”
나의 내면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며 내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나는 내 자신이 가엾고 안쓰러웠다.
그러자 첫째가 나에게 쏟는 짜증도 점점 버겁게 느껴졌다.
‘나는 이렇게 소중한 존재이고, 아무도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어!’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즈음의 일이었다.
잠깐 10분만 잔다며 “엄마, 나 10분 뒤에 꼭 깨워줘!” 라고 첫째가 부탁했다.
10분 뒤 나는 첫째가 제일 좋아하는 등 긁어주기를 하며 살포시 깨워주었다.
첫째는 잠결에 “10분만 더”라고 말했고, 나는 10분 뒤, 또 10분 뒤 그렇게 총 세 번을 깨웠다.
“이제 일어나야지~ 30분이 지났네. 자, 일어나자!”
다정하게 말하는 나에게 첫째가 확 짜증을 냈다.
“아, 뭐야~ 내가 깨우라고 했잖아! 엄마 때문에 30분 지났잖아. 아 몰라!”
첫째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순간, 나는 엄청난 분노가 차올랐다.
싱크대로 달려가 설거지를 하며 그릇에 내 분노를 쏟았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설거지 장갑을 던져버리고, 첫째가 거실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체육복을 들고 첫째의 방문을 열어 던져버렸다.
그리고 내 감정을 쏟아냈다.
“어떻게 엄마한테 그럴 수 있어? 엄마가 더 어떻게 잘해줘? 내가 얼마나 좋은 엄마인데! 왜 엄마한테 감사해하지 않아? 너,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있는 줄 알아? 왜 인정하지 않냐고!”
첫째를 혼내고 잔소리를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분노가 섞인 말을 내뱉은 것은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이었다. 첫째와의 관계를 위해서 내면아이 치유까지 하고 있는 나에게 첫째의 행동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다 갑자기 머리를 ‘땡’ 하고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야.’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첫째에게 화를 참지 못하고 분노를 쏟아낸 것이 끔찍한 게 아니었다.
내가 첫째에게 쏟아낸 말은, 나의 내면아이가 슬프게 쏟아낸 바로 그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거울 속의 내가 내 입을 빌려 울부짖는 것을 보는 듯했다.
10살의 내면아이가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그 말을, 40대의 내가 16살의 첫째 앞에서 투정을 부리듯 똑같이 쏟아냈던 것이다.
"엄마, 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칭찬해주지 않아? 내가 더 얼마나 잘해야돼? 나 지금도 잘하고 있잖아."
"너 왜 엄마한테 감사해하지 않아? 엄마가 더 어떻게 잘해줘? 내가 얼마나 좋은 엄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