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닮은 불안, 불안이 닮은 사랑
“엄마, 나 요즘 글쓰기 모임 한다고 했잖아. 거기에서 나에 대해서 자꾸 생각해보고 글을 써보라고 하거든. 그러다 보니까 내 어린 시절이 궁금하더라? 엄마, 나는 어떻게 자랐어? 난 어떤 딸이었어?”
어느 날 나는 친정엄마에게 전화해 슬쩍 돌려 말하며 물어보았다.
“어휴~ 말도 마. 엄마가 너 키울 때 얼마나 잘했니!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지. 너 고등학교 때 유학 갈 때 말야. 엄마가 대단했던 거 알지? 다시 하라면 못해~ 그런 엄마가 어딨겠니. 엄마가 매일 새벽같이 대사관 가고 그런 거 기억하지?”
평소 통화할 땐 조용히 대화하던 엄마가 갑자기 쉴 새 없이 엄마의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나도 참 대단하지. 다시 하라면 못해~”라는 말이 세네 번씩 반복되었다.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다.
그토록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나는, 역시나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나의 엄마의 딸이었다.
아마도 칭찬과 인정에 익숙지 않고, 어쩌면 결핍이 있었을 수도 있는 엄마는 나를 사랑과 희생으로 키워주셨지만 나는 늘 배고팠을 것이다. 잘하지 못하면 더 인정을 못 받을까 봐 불안하기도 했기에 나는 뭐든 잘하고, 손이 가지 않는 딸로 커갔다. 엄마는 내 앞에서는 칭찬하지 못했지만 어디에서나 내 자랑을 하고 다니셨다.
그런 나도 엄마가 되었다. 나의 불안은 고스란히 내 첫째 앞에서 나타났다.
'내가 좋은 엄마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지? 부족한 엄마가 되면 인정해주지 않겠지?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줄 거야.' 라는 생각이 내 안에 가득했다.
실제로 나는 주변에서도 인정하는 좋은 엄마가 되었다.
첫째는 증명이라도 하듯 바르고 착하게 잘 커주었다.
그러다 첫째가 중3이 되어 이사와 전학이라는 환경의 변화가 생기자 나의 타이틀에 균열이 생겼다.
아이는 그대로 였지만 내가 무너졌다.
완벽하고 싶었던 나에게 ‘내가 잘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강하게 올라오게 되었다.
나의 불안한 마음을 채워줄 상대로 나는 첫째를 선택했고, “엄마가 이렇게 불안해. 네가 힘들까 봐. 하지만 네가 힘들어도 돼. 나는 좋은 엄마니까 엄마의 사랑으로 다 감싸줄게.”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사실 별로 힘들지도, 적응이 어렵지도 않았던 첫째는 언제나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나에게 맞춰주었다.
“엄마 말대로 나 힘들어. 엄마 해결해줘.”라고 하며 나를 쓰임새 있게 만들어준 것이었다.
내가 받아주면 받아줄수록 첫째는 더 힘든 감정을 끌어올리고, 불안을 만들어 나에게 던졌고, 나는 또 그것을 받고 뒤치닥거리를 하며 딸에게 자석처럼 붙다 못해 감정적으로 뒤엉켜 있었단 것을 깨달았다. 내가 뽑았던 '불안' 카드의 울던 모습은 나이자 딸이었고, 들고 있던 가면도 나이자 딸이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대물림이 그대로 보였다.
어린 시절 받아온 상처로 인한 대물림을 TV에서 보거나 들어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딜 봐서 상처와 결핍이 있겠어. 나처럼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라며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완벽한 엄마가 되지 마세요. 아이를 대충 키우세요.’라는 책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완벽할 수 있으면 완벽한 게 더 좋지!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글 아니겠어?’ 라고 교만한 생각을 하며 아이를 키워왔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을 고백하고 인정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모든 대물림을 끊어버리고, 나의 인생을 새롭게 살아야 할 엄청난 숙제를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