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먼저 날아갈게
얼마전, 방 정리를 하던 첫째가 말했다.
“엄마, 나 뭐 말해도 돼?”
아이는 손에 두 개의 상자를 들고 나왔다.
“엄마가 나한테 써줬던 편지들 있잖아. 나 힘내라고 써줬던 편지들. 그거 사실 내가 아끼는 편지들 모은 통에 못 넣었어.”
아이는 두 개의 상자를 열어서 보여줬다.
울면서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빼곡하게 내가 얼마나 첫째를 생각하고 있는지, 첫째의 힘듦을 똑같이 느끼고 있는지 써 내려갔던 편지들은 잡동사니들이 넣어져 있는 통에 아무렇게나 들어 있었다.
소중하게 아끼는 편지 상자 안에는 ‘김치볶음밥은 전자레인지 30초 데워 먹어!’ ‘냉동실 안에 피자 있어~’ ‘엄마 오늘은 좀 늦게 퇴근해!’ 라고 내가 오래전 아무렇게나 썼던 포스트잇들이 가득했다.
“이상하게 힘내라고 써준 편지인데, 집에 와서 이 편지들을 보면 더 마음이 힘들었어.”
“첫째야, 엄마가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을 했는지 몰라. 엄마의 감정은 엄마의 것이라, 그것을 그대로 담으면 안 됐는데 말이야. 네가 스스로 감정을 관리하고 자신을 들여다 볼 기회도 엄마가 주지 않았던 것 같아. 너는 이렇게 단단하고 멋진 아이인데 말야. 엄마가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어.”
많은 부모들은 아기 새처럼 작고 여린 아이들을 둥지 안에서 최고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우려고 온갖 헌신을 다 한다. 그들의 목표는 모두 아기 새가 날개짓을 배워 두 날개를 펴고 아름답게 둥지를 떠날 수 있게 하는 것일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하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나부터 둥지를 떠나 내 아이에게 나는 모습을 직접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가 잘 커서 둥지를 떠나길 바라면서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꽉 껴안고 놓아주지 않는 엄마였다. '너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라는 말이 수도 없이 내 귓가에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매일 달리고 글을 쓰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둥지를 떠나야 할 때.
둥지를 떠나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