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자리를 땀으로 채우다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새로 이사온 곳에서의 시간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방학 동안 아이들은 오랜만에 양가 조부모님 댁에서 지냈다. 아이들과 떨어져 글을 쓰며 내면아이를 만나 치유하는 과정을 겪고, 나와 첫째의 관계를 돌아보던 뜨거운 여름이었다.
개학 날이 다가오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한 집에 아이들이, 특히 첫째와 함께 있다 보니 마음 한쪽에 불안이 또 다시 스며들기 시작했다.
첫째와의 관계의 재정비가 필요하고, 이제 나는 나대로, 첫째는 첫째대로, 그리고 둘째 역시 동등하게 바라봐줘야 하는 전환점에 와 있는 건 알았지만 그 방법이 명확하지 않았다.
개학 날이 되었다.
첫째 방을 사선으로 훔쳐보며 첫째의 감정 상태를 살피고, 내가 해줄 일이 없는지 뒤치닥리를 찾는 습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머리로는 알았다.
첫째의 감정은 첫째의 것이고,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조장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러나 나의 불안을 없애는 방법으로는 이전처럼 첫째를 내 손 위에 올려놓고 꽉 움켜쥐고 보호해주는 게 가장 쉽게 느껴졌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며 안절부절하다가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얘들아, 엄마 운동하러 나갈게. 너희는 알아서 잘 준비하고 학교 가!”
흔들리는 마음이 들킬까 봐 나는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첫째가 내 눈앞에 안 보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무작정 바닷가로 걸었다.
8월 중순의 태양은 너무도 뜨거웠다.
‘한 번 달려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나온 터였다. 땀이 얼굴을 타고 턱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냥 사랑해주면 안될까? 하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사랑은 건강한 사랑이 아니잖아.' 라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 했다.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땀이 줄줄 흘렀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졌다. 첫째 때문에 불안해서 흘리던 눈물이 아님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내면아이가 불쌍하고 안쓰러워 흘린 눈물도 아니었다.
이렇게 새롭게 살겠다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내 자신이 대견하다고 느끼며 흘린 감격의 눈물이었다.
땀과 눈물이 뒤섞인 얼굴을 닦으며 생각했다.
‘이제야 내가 나를 위해 사는구나!’
'눈물보다 값진게 바로 이 땀이구나!'
‘이것이 내 행동을 변화시킬 구체적인 방법이구나!’
뛸수록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둘째 날, 셋째 날도 어김없이 아침마다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엄마, 오늘도 운동 가? 진짜 멋지다! 엄마 갓생이네!”
“매일 그렇게 운동하면 엄마한테 정말 좋을 것 같아!”
아이들의 응원은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집 안에는 평온이 찾아왔다.
첫째는 머리 말리기도, 양말 신기도 혼자 챙겼다.
해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먼저 옆에 붙어서 해주던 엄마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요즘 왜 이렇게 학교 가는 게 편하지?" 라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등교하는 보기드문 중3이 바로 우리집에 살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가고 언니 방에서 울면서 이야기하는 엄마가 없으니 둘째 역시 웃음을 되찾아갔다.
"엄마, 언니가 혼자 다 할 수 있으니까 엄마가 해 줄 필요 없어. 엄마도 엄마 인생을 살아. 그게 모두가 행복한거야!"
나보다 더 성숙한 생각을 하고 있는 둘째에게 참 고마운 시간이었다.
어느 날 첫째가 물었다.
“엄마,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가끔 내가 엄마가 된 걸 상상하면 좀 무서워. 나 살면서 엄마가 해줬던 이야기들이 생각나거든. 그런 게 다 기억나더라구. 그렇게 부모가 중요한데, 나도 잘할 수 있을까?”
나는 대답했다.
“엄마도 요즘 배우고 있어. 좋은 엄마가 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대. 엄마도 그걸 몰라서 너를 꽉 붙잡으려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이제야 깨달았어.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면 그게 너에게도 전해진다는 걸. 엄마가 우리 첫째 정말 많이 사랑하고 귀하게 키워주고 싶지만, 완벽하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어른이 되어 마음속에 상처가 떠오를 수도 있어. 그때 ‘아, 엄마도 그렇게 자기를 사랑하면서 성장했지?’라는 생각이 들게 엄마가 지금 제대로 살 거야. 지금 이렇게 달리고 글쓰고 치유하는 엄마의 이 모습을 기억해줘.”
좋은 엄마가 되는 것도, 아이를 잘 키우는 것보다도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100일이 가까워지도록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고 있다!)
나에게 달리기는 거리와 속도의 기록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삶의 상징이자 내가 나로서 살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내 삶의 상처와 결핍이 나의 목표로 바뀌어 인생이 새로워지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