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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 Jul 20. 2023

결핍인간

 여유 따위...

어느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이가 가장 어린 막둥님이 건배를 할 때 술잔이 비어있다는 것이 화두에 올랐다. 막둥님을 장난으로 놀리는 상황이 확실하긴 했는데 누군가 나에게,

"봤죠, 봤죠, 피넛님! 막둥님 잔에 술이 없었다니까! 아유~ 막내가 벌써부터 그럼 쓰나, 캬캬캬." 하길래

내가 "아뇨. 막둥님 잔에 술 있는 거 내가 봤는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막둥님을 놀리던 분이 나에게 말했다.

"아이~ 피넛님 재미없게~ 피넛님은 여유가 없어 여유가~"

나는 "제가 원래 놀리고 그런 걸 좀 못 참아가지고. 하하하하하." 하고 대답했다.

어느새 이야기는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웃고 떠드는 즐거운 자리였지만,

그날 내가 들었던 "여유가 없다"는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나에게 여유가 없다는 말을 했던 상대방 하고는 대화를 많이 나눠본 적은 없었다. 농담으로 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난 왠지 그 말이 나를 관통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가 없는 사람



언제나 최악을 생각하고,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들을 떠올린다. 걱정이 많다. 나의 하루는 조급하고 초조하고 불안하다. 그저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경주마. 농담을 받아줄 여유 따위는 나에게 없다.


최근에 친구와 간 여행에서조차 나는 '뽕을 뽑아야 해!'라는 마음으로 편히 쉬지 못하고 쉴 새 없이 돌아다니다 왔다. 분명 출발 전에는 여유롭게 자연경관을 즐기려고 했던 힐링 여행이었는데, 막상 차가 출발하자 최고의 맛집, 최고의 관광지, 최고의 여행코스를 찾아 누구보다 많은 서치를 하고 기진맥진해버린 것이다.

여행에서조차 여유 따위는 개나 줘버린 나.


지난 나의 글들을 쭉 읽어보니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이 '버틴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을 버티고 있는 걸까.

무엇을 위해 버티고 있는 걸까.

어쩌다 나의 하루는 버티다가 끝나버리는 걸까.

불안하고 초조하다고 해도 딱히 바뀌는 것은 없는데.

어째서 나는 그저 그런 마음으로 버티는 것일까.


여유롭고 즐기는 마음가짐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나도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일상을 돌아보고, 농담도 화끈하게 받아주고 싶은데.


당장 해내야 하는 과업이 있고, 이것을 해내야 월급을 받고, 또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건데. 그 안에서 주변을 살피고, 쉬어가고, 여유를 찾는다는 것은 아직까진 나에게 또 다른 과업으로만 느껴진다.

여유란 넘침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 같은데, 시간을 쪼개 동료들과 조금씩 농담을 받아주고, 티타임을 갖고, 업무 중간중간 차도 마시고 과자도 까먹고 하면서 나만의 여유를 찾아봐야 하는 걸까. (이게... 여… 유...? 맞아...?)


아무래도 일이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여유롭고 싶지만 그것을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는지까지는 알지 못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말 여유라는 게 있긴 한 걸까. 여유가 되면(?) 나에게 여유가 없다고 말해주었던 상대방에게 묻고 싶다.

’ 어떻게 하면 여유로울 수 있나요?‘


나와 정반대에 있는 것 같은 여유.

정말 여유라는 것이 실존하는 것인지부터 고민하는 나의 모습을 보니...

역시 나는 여유가 없는 사람이 맞나 보다.


어쩌겠어, 이게 나 인 걸.

타인에게 보여지는 여유까지 고려할 여유는 없는 나는, 결핍인간 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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