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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 Jun 12. 2023

경계하는 마음

더 웨일 후기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요일 주말 저녁에는 무비나잇이 시행된다.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토요일, 어둑어둑 어둠이 내려앉으면 빔 프로젝터를 켜고 영화를 보는 것을 나는 무비나잇이라고 칭한다. 주로 친구가 영화 추천을 하고, 나는 시청한다.

별다른 사전 정보는… 크게 없는 편.


“어디서 상을 받았대.”, “네가 좋아할 만한 영화다.”라는  코멘트를 붙여주며 보여준 이번 영화는 ‘더 웨일’

사전에 영화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래서 다이어트는 언제 시작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시청했다.


주인공 남자가 다이어트를 하는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다이어트를 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한 건지 나조차도 의아할 뿐이다.

(아, 너무나도 얕은 나의 생각의 깊이여….!)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남자 주인공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영화의 막이 내리자 나는 살짝 당황했다.

‘아니, 지 편한 대로 살고 욕망도 절제하지 못하고선 또 자기 편한 대로 구원받고 간 거야?!’

자신의 행복과 사랑을 찾아 가족을 등지고 허무를 채우기 위해 몸이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의 폭식을 하며 인생의 마지막이 왔음을 실감하자 자녀에게서 구원을 받으려 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만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화가 나기도 했고,

‘어느 부분에서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라고 생각해서 이 영화를 틀어준 거지?‘

하고 이 영화를 추천해 준 친구에게 따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 영화가 의미하는 바를, 나는 사실 잘 이해하지 못했다. 뭔가 찝찝했고, 편한 느낌은 아닌 어려운 영화… 정도가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감상평이다.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어째서 계속 영화에 대한 불편한 여운이 남았다.


그래서 영화를 조금 더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떠올린 장면은, 남자주인공과 그의 전부인이 딸에 대해 대화하는 씬이었다.

둘에게는 딸이 있는데, 전부인은 딸이 악마라며 매일 사고만 치고 악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악담을 한다. 그에 대해 남자 주인공은 오히려 반대라며 딸은 좋은 마음씨를 갖고 있다며 사례를 들어주기도 하며 반박한다.


어떠한 사건이나 사람을 대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한다.

자신만의 시야와 해석이 없다면 타인이 주입하는 대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남자주인공은 자신이 바라본 딸의 모습이 진짜라고 믿는다. 딸의 행동의 배경을 생각하고 그녀의 진심을 떠올린다.

자신만의 해석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것.

그것은 좋은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배척하고 폄하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으로 받아들여야지, 타인의 평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선 안된다는 (특히 그것이 부정적인 것일 때는 더욱더) 다짐을 해보게 되는 씬이었다.


사실 나도 나의 상황에 따라 영화를 해석한다.

요즘 나의 주변에는 나를 흔드는 말들이 많다.

흔들리지 않는 올곧은 시야를 갖고 싶지만 나는 너무나도 연약하다. 마치 영화에서 초코바를, 피자를, 인스턴트식품을 마구 목구멍으로 쑤셔 넣는, 식욕을 참지 못하는 주인공과 같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회피하는 심정으로 타인의 생각을 내 머릿속에 쑤셔 넣는다.

주입되는 인스턴트식품처럼 타인의 정리된 생각들은 너무 편하고 안락하다.

그렇게 서서히 물들다가 자신의 의지로 땅에 떨어진 열쇠 하나 줍지 못하는, 침대에 일어나는 것조차 간신히 일 정도인 남자주인공과 같은 상태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나에게 이 영화는 경고의 영화였다.


어쩌면, 친구가 알맞은 영화를 추천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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